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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64

삶의 여백, 산 ■                      삶의 여백, 산                                         최호 안길근물속을 헤엄치던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 잠시 머물렀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도심의 좁은 주택 안을 오가며 마음의 숲을 거두었다. 그러나 결국 숨이 막혔다. 아스팔트 위를 걷다 문득, ‘나는 본래 산사람이었다’는 자각이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수년이 흘렀다. 산은 변함없었다. 시간의 주름이 얼굴을 덮을수록, 산은 더욱 부드럽게 등을 내어주었다. 도시에서의 일탈은 짧았고, 그 짧은 틈으로 산은 다시 나를 품었다. 산은 말이 없고, 판단이 없으며, 늘 있는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유일한 친구다.산책길에 들어서면 산은 내게 어깨를 내어주고, 새소리는.. 2025. 4. 10.
천년의 잎 ■                      천년의 잎                                소엽 박경숙사위진 연기 자락산 그늘까지 번지던 날,차마 너의 안부를 묻지 못했다붉디붉은 침묵이지리산 골짝마다 스미는 동안너만은 살아있기를,그 바람조차 죄처럼 두 손 모았다한때,햇살 한 사발에 목욕하던뽀얀 잎의 숨결대숲 바람과 눈 맞던 너를잊은 적 없기에청명의 골짜기곡우의 빗물 한줄기 머금은 너를 다시 만나니그윽한 향으로 말없이 품어 안는다그을린 숨결 너머에도다시 피어나는 것이 찻잎이라면내 마음도 너처럼한나절 향기로나 살아도 좋으리■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소엽 박경숙 시인은 자연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가만히 길어 올리는 시를 써온 작가이다. 특히 차(茶)에 대한 사랑은 단.. 2025. 4. 10.
흔적 ㅡ 시인 변희자 ■ 흔적 시인 변희자그리움은허공을 떠도는 발자국손끝 닿지 않는 빈 골목그리움은구름 끝에 걸린 바람가슴을 짓누르는 한숨그리움은눈 감아도 선명한 헛것없고 또 없는 머나먼 섬끝내이슬처럼 스러지는한 점 바람 속 흔적■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변희자 시인의 '흔적'은 그리움이라는 정서의 실체를 부재와 허무 속에서 포착하려는 시적 사유의 정수를 보여준다. 삶의 구체를 넘어선 그리움의 형상화는, 결국 존재의 본질과 무상성에 대한 시인의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이 시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며, 결국 사라지고 마는 '흔적'의 존재론을 품고 있다.시의 첫 연에서 "허공을 떠도는 발자국.. 2025. 4. 10.
할미꽃 진달래꽃 시인 강문규 ■                  할미꽃 진달래꽃                                          시인 강문규산들산들 봄바람봄 햇살 드리워진앞산에진달래 할미꽃 활짝 피었다꼬부랑 영감꼬부랑 할머니 두 손 꼭 잡고덧없이 흘러가는푸른 동강을 바라본다흰머리 잔주름에허리가 굽은 이 신세세월을 탓하랴누구를 원망하랴파란 하늘흘러가는 구름바라보며한숨만 내쉰다내곱던 허리는할미꽃이 되었고내 검은 머리는하얀 서리가 내렸구나무명저고리 무명치마에 검은 머리 진달래꽃 꽃아 준그 청춘이 그립다반백 년 세월휜 머리에진달래꽃 어울릴까마는그래도나는 꽃을 꽃아 준다검은 머리 휜 머리 되었어도봄에 핀 진달래꽃은옛 청춘 그대로다■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강문규 시인의 '할미꽃 진달래꽃'은 늙음과 청춘, 사랑과 그리움.. 2025. 4. 10.
초승달 다리 ■                초승달 다리                                  시인 변희자정겨운 그의 전화숨 가쁘게냉큼 받는다시가 예쁘다고잘 지었다고맑은 시를 타고조심스레 건너온 진심밤섬을 이어주는초승달 닮은다리 위를 지나내 마음이살며시그에게 건너간다■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시인 변희자의 '초승달 다리'는 마치 처럼, 마음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중심에 둔 사랑의 서정시다. 그러나 그 다리는 결코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초승달처럼 가늘고 여린, 그러나 그만큼 아름답고 간절한 다리다. 시인은 이 다리를 통해 임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온전히 실어 보낸다.‘정겨운 그의 전화’로 시작되는 첫 구절은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 하나에 심장이 뛰는 이의 설렘을 고스.. 2025. 4. 10.
신체의 비밀 ■                신체의 비밀                     시인  이상엽칼과 도끼가요리할 때 장작 팰 때도움이 되고자칫 무기가 됩니다머리는 생존을 위한사령부입니다나쁜 생각을 하면무기가 됩니다귀로 듣고손으로 만지고발로 뛰고모두 생존에 필요합니다이들도무기가 됩니다입은 먹고 말하고좋은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칭찬도 하며생존에 꼭 필요합니다거친 말과 험담은무기가 됩니다모든 영혼의 학습을 위하여곱게 써야 될 것입니다무기여 잘 가거라■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이상엽 시인의 '신체의 비밀'은 의사로서의 직업적 체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육체의 기능을 단순한 생물학적 도구가 아닌 윤리적·미학적 의미를 담은 ‘영혼의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인은 생존의 기제로 작동하는 신체의 각 부위를.. 2025.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