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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비밀
시인 이상엽
칼과 도끼가
요리할 때 장작 팰 때
도움이 되고
자칫 무기가 됩니다
머리는 생존을 위한
사령부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면
무기가 됩니다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뛰고
모두 생존에 필요합니다
이들도
무기가 됩니다
입은 먹고 말하고
좋은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칭찬도 하며
생존에 꼭 필요합니다
거친 말과 험담은
무기가 됩니다
모든 영혼의 학습을 위하여
곱게 써야 될 것입니다
무기여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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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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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시인의 '신체의 비밀'은 의사로서의 직업적 체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육체의 기능을 단순한 생물학적 도구가 아닌 윤리적·미학적 의미를 담은 ‘영혼의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인은 생존의 기제로 작동하는 신체의 각 부위를 ‘도구’로 규정하면서도, 그것들이 동시에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인간의 이중성과 도덕적 책임을 일깨운다.
칼과 도끼는 요리를 하고 장작을 패는 도구이자, 폭력의 수단으로 돌변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는 단지 도구의 속성만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와 의도를 반영한다. 머리는 사령부이고, 입은 말과 노래의 통로이며, 귀와 손과 발은 삶의 감각기관이지만, 부정한 감정과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이들은 모두 ‘무기’로 전락한다. 이 간명한 구조는 시인이 의학과 문학, 과학과 감성, 기능과 윤리 사이에서 모색한 내면의 언어를 단정히 드러낸다.
‘무기여 잘 가거라’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마치 청진기를 내려놓고 만년필을 든 헤밍웨이처럼, 단호하고도 품위 있는 퇴장을 선언한다. 그것은 단지 무기를 내려놓자는 제안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회복하자는 도덕적 결단이며,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미학적 행위이기도 하다. 과학은 몸을 분석하지만, 문학은 몸을 해석한다. 이상엽 시인은 그 경계에서 해부학적 사고를 문학적 정념으로 전환시킨다. ‘곱게 써야 할’ 신체는 결국 인간됨의 근본 윤리이자, 삶을 조형하는 미적 수단임을 말한다.
이 시는 생존의 본능을 품은 신체를, 공동체의 책임과 연대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작가의 문학은 자연과학의 해석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윤리를 껴안는 문명적 상상력이다. 곧, 이 시는 단순한 신체의 기능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방향을 묻는 하나의 철학적 서사라 할 수 있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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