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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벽면을 대하며 ㅡ 시인 백영호

by 청람등불 2025. 4. 9.







             벽면을 대하며




                          시인 백영호





벽면 앞에 가부좌로
명상에 든다
내가 나를 찾아서
나를 보며 내면을 만진다
속살 훑는다
정신의 무게 다는 시간
욕심과 근심
짜증과 성냄
이기와 질투
버릴 것만 잔뜩이니  

뱃살이 나오고
빠알간 경고장에

나를 때린다
나를  치우고
버리고 비우고 날리며 다이어트 중

수만 가지 번민과

질문과 대답 속에
자아는 깨어나고
정신뼈 죽비 치며 씻고 헹구니
아하
한층 가벼워진 몸가짐
가난한 영혼으로
창공을 날아 날아 솟아오른다
파닥 파다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의 '벽면을 대하며'는 물질적 풍요와 욕망에 찌든 현대인의 자화상을 솔직하고 날카롭게 성찰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치열한 정신적 수행의 노정을 그린 작품이다. 시인은 벽면 앞에 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들며, 타인을 위한 수행이 아닌 철저히 ‘나’를 위한 수행을 택한다. 이는 그의 삶의 철학이 외면보다는 내면의 정화와 성숙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작품의 언어는 간결하고 솔직하다. ‘속살 훑는다’는 표현처럼 육체와 정신을 모두 살핀다. ‘정신의 무게 다는 시간’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현대인의 내면에 깃든 무거운 짐들, 즉 ‘욕심과 근심, 짜증과 성냄, 이기와 질투’를 하나하나 도려내듯 바라본다. 이때의 고통은 현실적이기에 ‘뱃살’이나 ‘경고장’과 같은 물질적 상징으로 구현된다.
 그것은 단순한 풍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때리고 치우고 비우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다이어트’라는 현대적 용어는 그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실존적으로 전복시킨다.

백 시인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행위를 단순한 소극적 해탈이 아니라, ‘정신뼈 죽비 치며’의 표현처럼 치열하고도 능동적인 깨달음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한층 가벼워진 몸가짐’과 ‘가난한 영혼으로 창공을 날아’ 오르는 이미지에 이르며, 참된 자아의 탄생과 정신적 해방을 노래한다.

이 시는 백영호 시인의 작품 세계가 내면의 정직한 탐색과 정신의 가난을 지향하는 깊은 가치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감각적인 언어 대신, 일상의 구체어들을 차용하여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며도 날카로운 성찰을 이끌어낸다.
그의 미의식은 화려함보다는 절제 속의 진실, 고요함 속의 울림에 있다. 결국 백영호의 시는 ‘비우고 날리는’ 시학으로, 무위 속의 자유와 초월을 추구하는 순도 높은 시정신을 보여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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