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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절규
시인 이상엽
하늘의 시는
분노와 절규를
노래하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모르지만
이 세상에 온 것은
분노가 아니라
사랑을 배우러 왔다
사랑을 배우는 과정에
분노가 일수는 있다
그러나 궁극은 사랑이다
사랑을 배우다 배우다
미처 다 못 배우면
다시 시작이다
잠시 고향에서 쉬었다가
다시 시작이다
이 길에서
최대한 열심히 배우고자 한다
인생의 굴레를
계속하기 싫으면
열심히 사랑 공부한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상엽 시인은 오늘 아킬레스건 수술을 집도한다.
한 손엔 집도執刀, 또 한 손엔 펜을 잡는다.
그의 시 '분노와 절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목적을 탐색하며, 삶의 의미를 ‘사랑의 학습’으로 정의한 시다. 오랜 시간 인술을 실천한 정형외과 의사로서, 육체의 고통을 다루며 마주했을 수많은 인간 군상의 고뇌와 회복의 순간들이 그의 내면에서 ‘시’로 전환된 듯하다.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며, 언어는 단순하나 사유는 깊다.
첫 연에서는 하늘의 시, 곧 신적인 언어나 존재는 ‘분노와 절규’를 노래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이 흔히 빠지는 감정적 격랑에서 한 차원 초월한 세계의 언어가 존재함을 암시하며, 시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방향을 제시한다. ‘분노’ 대신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심에 놓으며, 삶의 본질이 학습의 연속임을 밝힌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왔고, 그 과정에서 분노가 개입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궁극은 사랑임을 천명한다.
중반부에서 "사랑을 배우다 배우다 / 미처 다 못 배우면 / 다시 시작이다"라는 반복은 인생의 윤회성과 배움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의학의 세계가 ‘완치’보다는 ‘관리’와 ‘지속’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처럼, 삶 또한 끝이 아니라 배움의 순환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고향에서 쉬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며, 다시 ‘시작’되는 노정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연은 일종의 윤리적 다짐처럼 읽힌다. ‘인생의 굴래’를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여기서 ‘열심히 사랑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깨달음의 태도로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수없이 경험해 온 의사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통찰이다.
이상엽 시인의 시에는 화려한 수사는 없다. 그러나 그가 일평생 의학서적을 탐독하며 길러온 정제된 언어 감각과, 환자들의 고통을 지켜본 자의 삶의 윤리와 미의식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의 인간 이해와 실존에 대한 태도가 담겼으며, 그 진정성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시는 단지 감정을 토로하는 수단이 아니라, 철학을 구현하는 행위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제 그가 새롭게 펼칠 시의 세계가 더욱 기대된다.
ㅡ 청람
https://youtube.com/shorts/vcw7BfbTRkE?si=qtVcDE_IG_XlGZ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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