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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닮은 마음
청람 김왕식
물가에 바람이 불어 작은 풀잎 하나를 흔든다. 평소엔 눈에 띄지 않던 풀잎이었으나, 아침 햇살이 비추는 순간 그 존재는 달라진다. 빛을 머금은 풀잎은 은은한 녹빛을 띠며 투명하게 반짝이고, 마치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잠시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생명 하나가 햇살 앞에 그렇게 아름답고 고결해진다. 그 순간, 자연이 말없이 전해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은 빛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빛깔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 빛은 밖에서 오는 어떤 따뜻한 손길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안의 마음은 때때로 움츠러들고 어두운 그늘 속에 머무르곤 한다. 때로는 외로움과 불안, 혹은 이유 없는 슬픔으로 마음의 창을 굳게 닫아두기도 한다. 어떤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다정한 눈빛, 혹은 한 줄기 햇살 같은 위로가 닿는 순간, 마음의 창이 스르르 열린다.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면, 그 안에서 빛이 자란다.
마치 햇살을 받은 풀잎이 제 모습을 찾듯, 사람의 마음도 그 빛 앞에서 본래의 빛깔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움츠렸던 감정들이 희망으로, 사랑으로,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 빛은 단지 위로를 넘어선다. 그것은 생명을 새롭게 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나아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가?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작은 한 줌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작고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햇살 아래 빛나는 풀잎처럼, 사람의 마음도 어딘가에서 스며든 온기 하나로 새로워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사랑하고, 다시 믿고, 다시 나아간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친다.
작은 풀잎들 위로 투명한 빛이 스며들고 있다. 아마 지금도 어느 누군가의 마음 위에도, 그런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그 따스함이 어떤 마음을 감싸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햇살이 그 사람의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다시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선물하길. 오늘도 햇살은 말없이 그렇게 다녀간다. 작은 풀잎 하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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