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겉껍질, 속껍질, 열매
시인 이상엽
알밤 하나
겉껍질, 속껍질, 속알밤
책 한 권
겉표지, 속표지, 속 내용
세상 많은 것이
껍질 2개, 속의 진짜가
있는 것 같다
우리네도
3겹
겉으로 보이는
그럴싸한 겉표지
에고라는
속표지로
자신을 보호하지
속살은
영혼
원래의 나, 참나
겉으로 보이는
겉껍질로
등급이 매겨지지만
깊이 있는 열매가
참 등급이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상엽 시인의 시 '겉껍질, 속껍질, 열매'는 평생 의학과 자연과학을 탐구해 온 작가의 지적 깊이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간결한 언어 속에 응축한 작품이다. 이 시는 밤알이라는 일상적인 자연물에서 출발하여 인간 존재의 구조적 층위를 조명하고,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외면이 아닌 내면의 '열매'에서 찾으려는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시인은 ‘겉껍질, 속껍질, 속알밤’이라는 단순하지만 과학적 관찰에서 비롯된 구조적 비유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저 하나의 단면이 아닌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 존재임을 설파한다. 이는 곧바로 책이라는 상징물로 확장되며, 시적 이미지가 일상의 사물과 개념을 아우르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중반 이후의 흐름에서 시인은 인간 존재로 시선을 돌리며, 인간 역시 ‘겉표지’와 ‘속표지’, 그리고 ‘속살’이라는 삼중 구조를 지닌 존재로 해석한다. ‘겉표지’는 사회적 외양과 포장, ‘속표지’는 자아의 방어기제인 ‘에고’, 그리고 ‘속살’은 본질적 자아이자 ‘영혼’ 혹은 ‘참나’로 규정된다. 이는 심리학적·철학적 통찰을 아우르는 해석이며, 동시에 작가의 과학자적 사유방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시인은 겉껍질로 세상에서 ‘등급’이 매겨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진정한 가치는 외면이 아닌 내면의 깊이에 있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이는 물질과 외형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윤리적 요청이기도 하다.
이상엽 시의 미학은 간명한 언어로 깊은 철학을 전한다는 점에 있다. 복잡한 사유를 단순한 구조와 일상어로 풀어내며, 독자가 쉽게 공감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과학자의 눈으로 사물과 인간을 입체적으로 관찰하고, 그 안에 숨은 진실을 시어로 끌어올리는 점에서, 그는 ‘의사 시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고귀하게 실현해 낸다.
이 시는 이상엽 작가가 평생 축적한 과학적 지식과 인간 이해가 응축된 철학적 미니멀리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겉보다 속을, 포장보다 본질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가 이 짧은 시 속에 묵직한 울림으로 자리 잡는다.
ㅡ 청람
'청람과 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꼬마리의 추억 ㅡ 시인 이상엽 (0) | 2025.04.08 |
---|---|
감정의 임계점 (0) | 2025.04.08 |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0) | 2025.04.08 |
하늘의 시인에게 ㅡ천상병 시인께 바칩니다 (0) | 2025.04.08 |
신 아리랑 (0) | 202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