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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다리
시인 변희자
정겨운 그의 전화
숨 가쁘게
냉큼 받는다
시가 예쁘다고
잘 지었다고
맑은 시를 타고
조심스레 건너온 진심
밤섬을 이어주는
초승달 닮은
다리 위를 지나
내 마음이
살며시
그에게 건너간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시인 변희자의 '초승달 다리'는 마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마음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중심에 둔 사랑의 서정시다. 그러나 그 다리는 결코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초승달처럼 가늘고 여린, 그러나 그만큼 아름답고 간절한 다리다. 시인은 이 다리를 통해 임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온전히 실어 보낸다.
‘정겨운 그의 전화’로 시작되는 첫 구절은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 하나에 심장이 뛰는 이의 설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숨 가쁘게 / 냉큼 받는다’는 표현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온 임의 음성에 놀라, 마치 바람결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한 여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모습은 낙엽 소리에도 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그리움, 버선발로 달려가는 절절한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임이 건넨 말은 단순히 ‘시가 예쁘다’는 칭찬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맑은 시를 타고 / 조심스레 건너온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임의 마음을 진심으로 읽어내려는 깊은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해석이다. 한마디 말에도 마음을 울리는 그 감정의 결은, 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간절한지를 보여준다.
‘밤섬을 이어주는 / 초승달 닮은 / 다리 위를 지나’라는 시구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그리움의 강을 건너는 심상의 절정을 이루며, 초승달 다리는 곧 임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길이 된다. 완결되지 않은 초승달의 형태는 아직 다 다가서지 못한, 그러나 곧 닿을 사랑의 여백을 상징하며, 그 다리 위에서 시인은 마침내 ‘내 마음이 / 살며시 / 그에게 건너간다’고 노래한다.
이 시는 절절하되 절제되어 있고, 말보다는 침묵으로, 행보보다는 기다림으로 사랑을 전한다. 이는 곧 시인이 품고 있는 사랑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다.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마음속에서 길어 올린 애정을 조용히 시에 실어 보내는 것. 그러한 사랑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맑다.
요컨대, '초승달 다리'는 사랑하는 임을 향한 시인의 각별한 애정이 한 줄 한 줄 고요히 배어 있는 작품이다. 절절한 그리움, 조심스러운 다가감, 말 없는 고백이 담긴 이 시는, 결국 임을 향한 시인의 마음이 한 자락 초승달 다리로 피어오른 아름다운 사랑의 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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