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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흔적 ㅡ 시인 변희자

by 청람등불 2025. 4. 10.



 

 






                             흔적  




                               시인 변희자




그리움은
허공을 떠도는 발자국
손끝 닿지 않는 빈 골목

그리움은
구름 끝에 걸린 바람
가슴을 짓누르는 한숨

그리움은
눈 감아도 선명한 헛것
없고 또 없는 머나먼 섬

끝내

이슬처럼 스러지는
한 점 바람 속 흔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흔적'은 그리움이라는 정서의 실체를 부재와 허무 속에서 포착하려는 시적 사유의 정수를 보여준다. 삶의 구체를 넘어선 그리움의 형상화는, 결국 존재의 본질과 무상성에 대한 시인의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 시는 단순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며, 결국 사라지고 마는 '흔적'의 존재론을 품고 있다.

시의 첫 연에서 "허공을 떠도는 발자국", "손끝 닿지 않는 빈 골목"은 그리움의 실체를 상실의 공간에 배치한다. 이는 시인이 삶을 결코 물질적 성취나 가시적 증거에 두지 않고, 오히려 허공과 공백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두 번째 연의 "구름 끝에 걸린 바람", "가슴을 짓누르는 한숨"으로 이어지며, 시적 주체가 겪는 정서적 무게감을 구체화한다. 시인은 바람조차 ‘구름 끝에 걸려’ 있다는 표현으로, 그리움이 얼마나 아득하고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를 형상화한다.

세 번째 연에서는 그리움이 "눈 감아도 선명한 헛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시인의 미의식이 응축되어 있다. '헛것'이면서도 '선명한'이 역설은, 시인이 바라보는 삶의 진실이 실재보다 기억, 혹은 환영 속에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없고 또 없는 머나먼 섬"은 그리움의 궁극적 귀결이 현실 부재와 시간적 거리감 속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 연은 짧지만 강렬하다. "이슬처럼 스러지는 / 한 점 바람 속 흔적"은 존재의 무상함을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드러낸다. 시인은 결국 모든 감정과 삶의 자취조차 바람 속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실존적 자각을 담담히 읊는다. 이는 덧없음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는 그리움조차 한때 ‘존재했음’을 기억하려는 시인의 태도다.

요컨대, 변희자 시인은 허무의 미학을 통해, 그리움이 인간 존재를 움직이는 근원적 정서이자, 삶의 중심부에 위치한 감정임을 말하고자 한다. 삶의 가치철학은 이 ‘그리움’이라는 공허한 실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사라지는 것을 사랑하며, 끝내 소멸되는 것을 품으려는 데 있다. 미의식은 허공·바람·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을 집요하게 포착하려는 절제된 언어미와 상징미에 깃들어 있다. 이 시는 짧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며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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