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과 수필41 3.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빈 그릇 2화 2화■ 빈 그릇빈 그릇은 비어 있어서 아름답다. 허전함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다는 여백이다. 밥을 담기 전에도, 다 비워낸 후에도 그릇은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 익숙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비울 수 있는 용기’다. 비워야 담을 수 있고, 담았던 것보다 남긴 마음이 더 오래간다. 빈 그릇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준다.□달삼은 설거지를 하다 손에 남은 그릇을 들어 올렸다. 하얗고 얇은 사기그릇.“스승님, 다 비운 그릇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에요. 허전한 듯, 깔끔한 듯, 이상하게 편안해요.”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그건 네 마음이 지금 어딘가 비워진 상태이기 때문이지. 가득 찼을 때보다, 다 비웠을 때가 오히.. 2025. 4. 11. 2.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골목길 1화 1화■ 골목길골목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다. 길과 길 사이, 삶과 삶이 맞닿는 지점이다. 넓은 도로에선 볼 수 없는 낡은 벽돌, 창틀 너머로 흐르던 연기, 고무신 끄는 소리, 골목은 기억이 쉬어가는 곳이다.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 사이, 아직 사라지지 못한 마음 하나가 남아 있다면, 아마 그건 골목 어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달삼은 오래된 골목길 입구에 서 있었다. 벽돌 담벼락에 이끼가 끼고, 전깃줄은 낮게 늘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된장국 끓는 냄새가 났다.“스승님, 이 길은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아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길처럼요.”스승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골목길은 기억의 복도지. 많은 이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2025. 4. 11. 1.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서문 Prologue ■ Prologue 오래된 말의 안쪽으로, 스승과 달삼이 걸어간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단어를 지나친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 가지만, 그 말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곁에 머물며 조용히 인생을 말해왔다. 찻잔, 마루, 바람, 빈 그릇, 손 편지, 골목길… 그런 말들엔 때로는 잊힌 정서가, 때로는 잃어버린 얼굴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익숙함은 가장 먼저 시들기 마련이라, 우리는 그 단어들에 깃든 삶의 온기를 종종 놓치곤 한다. 이 글은 그런 단어들을 다시 불러내는 여정이다. ‘스승’이라 불리는 존재와, 삶을 배워가는 제자 ‘달삼’이 함께 걷는다. 둘은 늘 같이 앉아 있고, 묻고, 기다리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답을 찾는다. 어떤 날은 비 오는 날 부쳐 먹는 빈대떡 한 장이 되고, 어떤 .. 2025. 4. 11. 사상계는 ㅡ 깨어 있는 정신의 놀이터 ■ 생각하는 인간의 품격, 사상의 세계 청람 김왕식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생각 없이 빵만 먹다 보면, 결국 빵조차 빼앗긴다. 장준하 선생이 『사상계』를 만들며 외친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생각하자.”시대는 침묵을 강요했고, 권력은 복종을 원했지만, 그는 고요한 죽음을 거부하고 뜨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의 뿌리는 바로 ‘사상의 세계’에 있었다.사상의 세계란 뭘까?한마디로 말하자면, ‘깨어 있는 정신의 놀이터’다. 그냥 생각만 굴리는 머리 운동장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마당이었다. 거기엔 철학이 있었고, 문학이 있었으며, 뜨거운 정의감과 차가운 현실인식이 공존했다. 『사상계.. 2025. 4. 11. 장준하 선생 사상계 재 창간 출판기념회에서 □사상계 재창간 ■ 사상계, 다시 깨어나다: 진실의 등불을 밝히며 2025년 4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역사적인 복간 행사가 열렸다. 그 이름, 사상계. 장준하 선생이 1953년 창간했던 이 잡지는 52년 전 폐간된 이후 한국 현대사의 양심으로 기억되어 왔다. 이날 행사에는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자 전 광복회장인 장호권 발행인(77), 장준하 기념사업회 박정수 관장을 비롯해, 그 정신을 흠모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전 녹색핵연합 사무총장이자 사상계 복간을 주도한 장원(67) 편집위원의 집념이 결실을 맺으며, 새로운 시대의 이정표가 세워졌다.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적 갈등과 가치의 혼돈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수많은 언론이 넘쳐나지만 진실을 말.. 2025. 4. 11. 내 것만 말하고 믿는다 ㅡ 확증편향確證偏向 □ 고집스러운 사람 ■ 내 것만 말하고 믿는다 사람의 눈은 모든 것을 보는 듯하나, 실상은 마음이 보는 만큼만 볼 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 본능에 맞서 진실을 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얼마나 고된 일인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각인된 신념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왜곡된 채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오늘 스승과 달삼은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인간 내면의 거울을 마주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스승님, 사람들은 왜 자꾸 자기만 옳다고 믿을까요?”“달삼아, 그건 ‘확증편향’이라는 놈 때문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만 확인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인간이거든.”“그럼 사람들은 진실보다 .. 2025. 4. 10.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