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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수필41

신발 한 켤레의 인사 ■ 신발 한 켤레의 인사 현관 앞, 오래된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낡고 조금 찢어진 발등, 그러나 단정히 묶인 끈. 말 대신 하루를 증명하던 자세였다.그 신발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집 안에서만 신던 그것을 아버지는 늘 문 앞에 나란히 놓으셨다. 마당 한 바퀴를 돌더라도 꼭 그 신발을 신으셨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하루는 늘 시작이었고, 시작에는 인사가 담겼다.신발을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하루는 얼마나 멀리 가는가 보다 어디를 향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아버지의 걸음은 짧았지만, 언제나 돌아올 길을 향해 있었다. 신발의 방향은 말 없는 다정함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병원에 계셨.. 2025. 4. 14.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어느 고즈넉한 봄날,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꽃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 달삼은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내음과 새들의 노랫소리는 두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깊은 사색 속으로 이끌었다. 이 길 위에서 그들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 인생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스승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달삼은 조심스레 물으며, 자신의 내면에 품은 수많은 의문들을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듯했다.스승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달삼아, 진정으로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란다. 욕망에 끌.. 2025. 4. 13.
청람서루 방문기 ㅡ 시인 변희자 ■ 청람서루 방문기 시인 변희자어제까지만 해도 얇게 입으면 몸이 움츠러들었었다. 아직 아기 봄바람이따뜻한 가슴에 깃들려 하려는 것일 게다.오늘은 아기 봄바람 따뜻이 품고 친구와 일산을 가는 날이다. 마음 맞는 친구와의 봄나들이다. 친구의 핸드폰 문자가 떴다. 승강장으로 전철이 가고 있고, 3칸 1열에 앉아 있다고 한다.경쾌하고 느리게 다가오는 전철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틈으로보이는 친구의 모습 환한 웃음이꽃향기로 봄바람처럼 전해왔다.전철에 나란히 앉아 마주 보고 가볍게 안부를 묻고 주의 사람들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간이 뒤로 가며 추억은 쌓이고 전철은 앞으로 앞으로 제 나아갈 길 서두름이 없다. 이 순간 이야기.. 2025. 4. 13.
문학, 상처 위에 피어난 연대의 언어 ■             문학, 상처 위에 피어난 연대의 언어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경사이자, 작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돌아보아야 할 문화적 이정표다.그러나 수상 이후 일부 보수 진영에서 작품에 담긴 역사적 해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문학이 정치의 그림자 아래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보수의 우려는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 그들의 상처는 오랜 세월 이념 갈등 속에서 반복된 오해와 누적된 분열의 기억 속에 뿌리내려 있다. 특히 소년이 온다>와 같은 작품이 한국 현대사 속의 비극을 다룰 때, 그 서술의 방향이 편향되어 있거나 일방적이라 느끼는 이들에게는 문학이 공감보다는 배제의 언어로 다가올 수 있다. 그들은 문학이.. 2025. 4. 13.
햇살을 닮은 사람, 엘리너 ■           햇살을 닮은 사람, 엘리너달삼은 그날따라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처럼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속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괜찮은 척하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더 큰 소리로 웃어야 했다.그럴 때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었다. 산비탈을 따라 난 좁은 길 끝,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있는 기와집. 스승이 머무는 곳이었다.스승은 마당에 떨어진 감 하나를 주워 손바닥 위에 굴리고 있었다. 달삼이 들어서자마자,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오늘은 어떤 생각이 널 이리 이끌었느냐.”달삼은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스승님… 사람들 앞에선 늘 밝은 척하고, 괜찮은 척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스스로도.. 2025. 4. 11.
4.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나무의자 3화 3화.■                    나무의자나무의자는 오래 앉을수록 더 편해진다. 반듯하지만 억세지 않고, 조용하지만 품이 넓다. 나뭇결 속에 스민 온기와 삐걱이는 소리는,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시간의 흔적이다. 비록 낡고 삐걱거리더라도, 누군가가 앉아 주기만 하면 언제나 제 자리를 내주는 존재. 나무의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다림’과 ‘받아냄’을 가르쳐준다.□해 질 무렵, 달삼은 마당 한 켠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등받이, 한 쪽 다리가 살짝 짧아 흔들리는 균형. 오래된 의자였다.“스승님, 이 의자는 삐걱거리긴 해도 이상하게 정이 가요.”스승도 조용히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그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준 의자기 때문이지. 낡았다는 건 쓸모를 다했다는 게 아니라, 많.. 2025.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