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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106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               잿빛 심장 위에, 나무 한 그루                                     청람 김왕식하늘은 그날 입을 닫았다.울음을 꾹 삼킨 구름들,말 잃은 새떼가 허공에 머물고능선은 마치 불길에 쫓기는 짐승처럼서둘러 몸을 접었다.숲은 함성도 없이 무너졌다.타는 나무의 비명은삶의 틈새마다 먹물처럼 번졌고집 한 채, 시간 한 덩이, 이름 없는 하루가재가 되어 흩어졌다.창백한 대문을 열면먼지보다 먼저 울음이 흘러든다.벽에 걸린 그리움의 액자,불타지 못한 한 줌의 기억은여전히 타닥타닥 심장을 찔렀다.텅 빈 마당, 무너진 식탁,고양이를 부르던 그 목소리는잿더미 아래 눌려 숨을 죽였다."살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은슬픔 앞에 놓인 허전한 방석 같았다.불은 떠났지만,그들의 심장엔 아.. 2025. 4. 8.
하늘의 시인에게 ㅡ천상병 시인께 바칩니다 ■하늘의 시인에게ㅡ천상병 시인께 바칩니다                   김왕식그대는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짐 하나 지고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길을 걸었다한 장의 입춘대길도그대 손에 들리면 시가 되었고굴러온 돌멩이 하나조차그대 눈에 닿으면 별이 되었다세상의 끝자락에서그대는 스스로를 ‘한평생 소풍 온 아이’라 불렀지만그 말속엔고통을 껴안은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웃음이 있었다가난했으나 비굴하지 않았고미쳤다 했으나 누구보다 맑았으며버려졌으나 누구보다 귀히 여겼다살아 있음의 모든 흔적을이제 그대는 하늘에 들었고하늘은 다시 시가 되었다당신이 남긴 한 줄의 시가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붙든다그러니 이제 안심하소서슬리퍼 벗어 구름 위에 두시고잠시 그곳 평상에 누우시길이승의 바람, 아직도 그대를 그리워하오니ㅡ 청람 2025. 4. 8.
신 아리랑 ■                      신 아리랑                           시인 변희자로봇 팔이 국수를거침없이 말아준다멸치 우린 국물에 취하고금속팔 매끈한 매력에,춤사위에 흠뻑 빠져든다아리아리 쓰리쓰리아라리오교통카드 발매기 앞허리 굽은 노인이 버튼 저 버튼 헤매이다겨우 받은 차표 한 장아리아리 쓰리쓰리아아라리오오노인이 뒷걸음친다눈앞에 선 버스에는운전석에 기사가 없다아리아리 쓰리쓰리너머었구나■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변희자 시인은 MZ 중년이다.그의 시 '신 아리랑'은 전통과 현대, 인간과 기술,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풍경을 '아리랑'이라는 민요의 정조 속에 절묘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시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 존엄성과 소외의 문제를 놓치지 않으며, 그것을 비판하.. 2025. 4. 8.
청람 서루, 봄날의 서정 ■                    청람 서루, 봄날의 서정                                    청람 김왕식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뿌려질 때,그 빛은 무수한 시어로 쏟아진다. 겨우내 굳었던 대지에 첫 숨을 불어넣듯, 봄은 아무 말 없이 존재를 증명한다. 누군가의 사랑처럼, 또는 오래 묵은 용서처럼. 꽃이 핀다. 피어난다는 건 스스로를 열어 세상과 만나겠다는 결심이다. 살며 한 번쯤은, 말없이 핀 꽃 앞에 눈시울을 적셔본 적이 있을 것이다.들판에 흔들리는 유채꽃 무리, 그 노란 물결은 이별을 떠난 연인의 손수건 같고, 바람결에 스치는 벚꽃은 그리운 이름 하나가 피고 지는 순간을 닮았다.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자연은 기억한다. 봄날의 서정은 말보다 깊고, 시보다 조용하다. 마.. 2025. 4. 8.
소유의 그림자 ■                      소유의 그림자                                       시인 변희자좋은 말만 듣고 살았다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많구나하며 살아왔다이제야 안다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언제부턴가작은 돌 하나라도 움켜쥐려 하면되돌아오는 건 질책뿐이었다착한 사람은빈손이어야 한다는 것꽃 한 송이를 품으려 하면그 향기마저 멀어져 간다는 것그게 진리였다■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변희자 시인의 '소유의 그림자'는 삶의 후반부에서 도달한 깨달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시다. ‘좋은 말만 듣고 살았다’는 첫 구절은 삶의 표면이 긍정적인 평가로 채워졌음을 드러내지만, 이어지는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이라는 반전의 고백은 내면의 공허와 실존적 각성을 시사한다.이는 단순.. 2025. 4. 8.
김소월 '진달래꽃'에 부쳐 ■그대 발끝에 봄이 지더이다― 김소월 '진달래꽃'에 부쳐                                     김왕식그대 가는 길목마다한 시대의 심장이 누웠다붉은 숨결로 피어난 진달래는사랑이 아닌 이별로 스러졌다그대는 침묵으로 시를 키우고나는 그 침묵을 노래로 불렀다바람은 아직도 그 구절을 더듬고산자락마다 그리움이 걸터앉는다누가 알았을까꽃잎 하나가 눈물 한 생이 될 줄을그리움의 뿌리는 땅보다 깊고이별은 피보다 붉다오늘도 나는그대의 언어로 봄을 견디며한 줄기 시를 꺾어 가슴에 꽂는다그대여, 그 발끝에 지던 봄이아직, 여기에 머문다ㅡ 청람 2025.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