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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그림자
시인 변희자
좋은 말만 듣고 살았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많구나
하며 살아왔다
이제야 안다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언제부턴가
작은 돌 하나라도 움켜쥐려 하면
되돌아오는 건 질책뿐이었다
착한 사람은
빈손이어야 한다는 것
꽃 한 송이를 품으려 하면
그 향기마저 멀어져 간다는 것
그게 진리였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변희자 시인의 '소유의 그림자'는 삶의 후반부에서 도달한 깨달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시다.
‘좋은 말만 듣고 살았다’는 첫 구절은 삶의 표면이 긍정적인 평가로 채워졌음을 드러내지만, 이어지는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이라는 반전의 고백은 내면의 공허와 실존적 각성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소유의 부재가 아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시인은 ‘작은 돌 하나라도 움켜쥐려 하면’이라는 은유를 통해, 무엇인가를 가지려는 순간 되돌아오는 것은 ‘질책’이라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타인의 기대와 도덕적 시선 속에서 ‘착한 사람’이란 존재가 소유를 갈망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강요를 비판하는 듯하다.
결국 ‘착한 사람은 빈손이어야 한다’는 통찰은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무소유의 가치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보인다.
‘꽃 한 송이를 품으려 하면 그 향기마저 멀어져 간다’는 구절은 삶의 아름다움조차 소유하려 할 때 상실된다는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이로써 시인은 무위(無爲)와 무소유의 미학을 따르고 있으며, 존재의 가치는 소유가 아닌 존재 그 자체에 있다는 동양적 철학에 뿌리내리고 있다. 소유의 그림자는 비워짐 속에 빛나는 자아의 흔적을 비추는 거울이다.
요컨대, 변희자 시인은 삶의 껍질을 벗고 비워낸 자리에 진실한 가치를 마주하는 태도를 추구한다. 시인은 미의식을 단순한 감각의 향유가 아닌, 비움과 거리 두기를 통해 도달하는 ‘향기 너머의 진실’로 보고 있다.
그의 시는 말없이 손을 거두는 겸허함으로, 독자에게 존재의 진실한 무게를 조용히 건네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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