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루본
시인ㆍ평론가 이오장
하늘과 땅은 꽃이
지구와 달은 별이 나누는데
사람과 사람은 하나
함께 숨 쉬며 한 숨결로 통한다
당신은 숨 쉬는가
옆 사람 숨소리 들리지 않는다면
고개 돌려 귀를 열어라
혼자만의 숨결에는 생명이 없다
떡시루와 가마솥 사이의 틈
지게와 작대기의 틈
삶은 콩과 지푸라기의 틈
그런 사이는 무엇으로 막을 수 있지만
그대가 벌린 틈은 막을 수 없다
오직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 열고
뜨거운 숨결을 나눠라
이웃과의 벽을 허물고
경쟁자 사이의 틈을 확인하라
벌어진 거리는 더 멀어지고
멀어진 사이에 된바람 불어
그대의 삶은 허물어진다
* 시루본 ㅡ '시룻번'의 비표준어
□
이오장 시인 약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부천문인회 고문
한국 NGO신문 신춘문예 운영위원장
문학신문사 문학연수원, 국보문학, 가온문학 시 창작 강사
제5회 전영택문학상, 제36회 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왕릉』 『고라실의 안과 밖』 『천관녀의 달』 『99인의 자화상』 『은행꽃』 등 21권
평론집: 『언어의 광합성, 창의적 언어』, 시평집: 『시의 향기를 찾아서』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오장 시인의 시 '시루본'은 ‘틈’이라는 일상의 미세한 간극을 시적 상상력과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시루와 가마솥, 지게와 작대기, 삶은 콩과 지푸라기 사이의 틈을 비유 삼아 사람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을 조명한다.
시인은 이를 단순한 공간적 거리로 보지 않고, 숨결의 단절, 곧 생명의 단절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틈'을 메우기 위한 감각의 복원, 마음의 개방, 생명의 회복을 요청하는 시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오장 작가의 시 세계는 늘 사람 중심에 있다. 그는 인간의 존재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삶의 본질을 '함께 숨 쉬는' 일로 환원한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이웃, 인간과 사물 간의 유기적 관계성을 시의 전면에 끌어올리며, 사물에 생명성을 부여하고 그 안에 깃든 정서를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대상 묘사나 감정 표현을 넘어서, 삶을 바라보는 윤리적 시선이자 미적 감응이라 할 수 있다.
'시루본'의 미의식은 '공감'과 '연결'에 있다. 시적 언어는 복잡하지 않으며, 투박한 듯 보이지만 정직하고 깊은 울림을 지닌다. ‘혼자만의 숨결에는 생명이 없다’는 직설적 표현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이는 그가 오랜 시간 공동체 속에서 살아온 삶의 경험과 철학, 특히 한국적 정서와 공동체적 가치에 천착해온 문학인으로서의 지향과 연결된다.
요컨대, 이오장 시인의 시는 인간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미학과 윤리의 언어다. 그는 일상의 틈을 관찰하고 그것을 시로 수선하며, 우리로 잊고 지낸 '숨결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으나, 그 속에 깃든 생명성과 관계의 울림은 어떤 격언보다 강하고 따뜻하다. 이 시대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시인의 목소리다.
ㅡ 청람
'청람과 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소월 '진달래꽃'에 부쳐 (0) | 2025.04.08 |
---|---|
뿔난 노인, 미소 짓는 노인 (0) | 2025.04.08 |
봄비의 장송곡(葬送曲) ― 친구를 보내며, (0) | 2025.04.07 |
흔적 ㅡ 시인 변희자 (2) | 2025.04.07 |
할미꽃 진달래꽃 시인 강문규 (0)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