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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의 장송곡(葬送曲) ― 친구를 보내며,
안최호
한 세월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가, 이제는 빈컨테이너의 낡은 기억을 남기고 조용히 부모 산소 곁에 누웠다.
몇 날 며칠을 맴돌던 봄비는 오늘따라 유독 애처롭게 내린다. 그대 떠나는 길목마다 물기 어린 꽃잎들이 피어나 진달래는 울음처럼 붉고, 개나리는 목쉰 인사처럼 노랗다. 그대 마지막 길을 따라 흐르는 이 빗물, 어쩌면 그대가 못다 한 인사를 대신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컨테이너 안에서 섯다를 던지며 세월의 무늬를 읽고 웃음과 탄식 사이를 오가던 날들. 그리운 그 시간들이 지금은 먼지처럼 가슴에 내려앉는다.
벚꽃보다 먼저 진 건,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짝을 지어 날아가는데 나는 오늘, 그대 없는 길 위에 혼자다. 텅 빈 마을을 걷는다. 마치 내 그림자마저 비에 녹아 사라질 듯 적막이 발끝까지 젖어든다.
다행이다, 봄비가 말없이 따라온다. 울컥이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 길의 끝에도 언젠가 그대가 기다릴 것임을 속삭여 준다.
친구야, 이제는 말없이 눕거라. 세상사 다 잊고 푸른 흙 속에서 푸른 나무로 자라거라. 네가 남긴 웃음과 한숨은 내 삶의 노래가 되어 매 해 봄마다 다시 피어날 것이다.
― 안최호, 봄비 속에 친구를 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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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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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최호 작가의 '봄비의 장송곡'은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적 언어를 통해 작가가 일관되게 지켜온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 글은 단순한 추도의 기록을 넘어, 생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품위와 회복의 미학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우선, 작품에는 작가의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관계 중심의 세계관이 투영된다. '빈컨테이너'에서 '섯다'를 나누던 친구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세상의 일부이다. 그러한 친구의 부재는 곧 자신 존재의 일부가 소멸된 듯한 결핍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이 상실 앞에서 절망하거나 냉소하지 않는다. 외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고요히 받아들인다. 이는 삶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 속에 놓아두는 동양적 무위(無爲)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미의식에 있어 이 글은 자연의 풍경을 내면 정서의 확장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감각이 돋보인다. 봄비는 눈물처럼 흐르며 슬픔을 대신 울어주고, 진달래와 개나리는 작별의 인사로 피어난다. 꽃잎, 비, 새, 대지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모두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감정의 대리자처럼 기능하며, 이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의 화신으로 여기는 안최호 특유의 자연미학을 잘 드러낸다.
"벚꽃보다 먼저 진 건, 꽃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문장은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통찰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마지막 단락에서 ‘푸른 흙 속에서 푸른 나무로 자라거라’는 구절은,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생명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생태적 윤회관이자, 죽은 자를 다시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환미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글은 고인의 생을 기리는 동시에, 남은 자의 삶 또한 위로하고 일으키는 치유의 문학이다. 안최호는 비탄의 정서를 지나 삶을 더 깊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슬픔 속에서도 꽃이 피고, 그 속에서 웃음이 기억되고, 그 기억이 곧 살아있는 자의 삶이 된다. 이는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그 안의 슬픔조차도 미로 전환시키는 작가의 문학적 태도를 집약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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