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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진달래꽃
시인 강문규
산들산들 봄바람
봄 햇살 드리워진
앞산에
진달래 할미꽃 활짝 피었다
꼬부랑 영감
꼬부랑 할머니 두 손 꼭 잡고
덧없이 흘러가는
푸른 동강을 바라본다
흰머리 잔주름에
허리가 굽은 이 신세
세월을 탓하랴
누구를 원망하랴
파란 하늘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쉰다
내곱던 허리는
할미꽃이 되었고
내 검은 머리는
하얀 서리가 내렸구나
무명저고리 무명치마에 검은 머리 진달래꽃 꽃아 준
그 청춘이 그립다
반백 년 세월
휜 머리에
진달래꽃 어울릴까마는
그래도
나는 꽃을 꽃아 준다
검은 머리 휜 머리 되었어도
봄에 핀 진달래꽃은
옛 청춘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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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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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 시인의 '할미꽃 진달래꽃'은 늙음과 청춘, 사랑과 그리움을 담백하고도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시 속에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존재의 가치가 녹아 있다.
시인은 ‘꼬부랑 영감, 꼬부랑 할머니’라는 친근하고 소박한 표현으로 노년의 부부를 그린다. 이들이 함께 ‘푸른 동강’을 바라보는 장면은 덧없지만 평화로운 시간의 흐름을 은유한다. ‘휜머리 잔주름’, ‘허리가 굽은 이 신세’는 육체의 노쇠함을 드러내지만, 시인은 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외려 그 세월 속에서도 흐르는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며 묵묵히 살아온 삶을 되새긴다.
“내곱던 허리는 / 할미꽃이 되었고 / 내 검은 머리는 / 하얀 서리가 내렸구나”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의 미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할미꽃은 단지 노인의 상징이 아니라, 세월을 견딘 자의 고귀한 모습이다. 진달래 또한 단순한 봄꽃이 아닌, ‘무명저고리 무명치마에 꽃아 준’ 사랑의 기억이며, 시인의 심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청춘의 상징이다. 시인은 육체는 변했지만, 사랑과 청춘의 본질은 여전히 진달래꽃처럼 생생하다고 노래한다.
이 작품은 삶의 궤적을 긍정하고, 노년에도 청춘을 기억하며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시인의 가치철학을 잘 담고 있다. 강문규 시인은 외적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정서와 관계, 기억을 중시하며, 세월을 통한 성숙이 곧 미(美)라는 깊은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 노년의 부부가 함께 봄꽃을 바라보며 과거를 되짚는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존엄성과 관계의 깊이를 성찰하게 한다. ‘그럼에도 꽃을 꽃아 주는’ 행위 속에 시인은 세월의 무게를 품은 사랑의 지속성과 인간 존재의 가치를 담아낸다.
요컨대, 이 시는 생의 노년에서 피어난 또 하나의 ‘봄’이며, 사라짐 속에 피어나는 삶의 증언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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