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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수상 등단, '평론부문' 수상 등단, '시부문' 수상 등단, 한국문학신문 공모 평론부문 대상 수상
낡은 구두의 말
■ 낡은 구두의 말 김왕식신발장 구석, 빛바랜 갈색 구두 한 켤레.굽은 닳고 앞코는 긁히고 가죽은 주름졌다.버리자니 손에 밴 온기가 아쉽고,신자니 남의 눈이 걸리는 그 세월의 짝이었다.어느 날 문득, 손이 갔다.솔로 먼지를 털고, 헝겊으로 문지르며묵은 침묵을 닦아냈다.굽엔 조심스레 본드를 발랐다.발에 넣자마자, 낯익은 편안함이 되살아났다.오래된 그 구두는 여전히 발을 기억하고 있었다.거리로 나서자, 기억들이 발끝에서 깨어났다.첫 출근길의 긴장, 데이트하던 오후의 설렘,차분히 아버지 제사에 가던 날의 정적,그리고, 말없이 퇴직하던 그날의 허전함.그 모든 굽이마다구두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한숨도, 미소도, 망설임도,시..
2025. 4. 14.
불의 계절, 기도의 손
■ 불의 계절, 기도의 손 김왕식 . 한 아이가 무릎 꿇는다.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정치의 혀는 서로를 찢으며,경제의 심장은 뿌리째 흔들려하루하루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시대.그리고 산불.산 하나가 타오르고,마을이 타고,사람들의 기억이 타고,마침내 하늘마저 붉게 물든다.모든 것이 타는 그 자리,모두가 등을 돌린 그 순간—그 소녀는, 한없이 작은 몸으로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조용히, 아주 조용히,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었다.그 손엔 무엇이 들렸을까.검은 재를 움켜쥔 손바닥일까.부서진 희망을 꿰매려는 실밥일까.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뜨거운 눈물 한 방울..
202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