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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화분 하나에서 피어난 것
김왕식
아파트 단지의 구석,
재활용품 더미 옆에 쓸쓸히 놓인 화분 하나.
금이 가고, 흙은 갈라져 먼지를 품고,
모든 가능성이 스러진 듯한 자리.
그러나 그 속에서
손톱만 한 푸른 잎 하나가
말없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햇살 한 줄 스미지 않는 그늘,
물기조차 사라진 메마른 흙 틈.
무관심의 시간 속에서도
그 작은 잎은 스스로를 놓지 않았다.
수많은 발길은 지나쳤고,
누군가는 그것을 '끝'이라 불렀지만,
어떤 눈길은 그 자리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금이 간 화분은 햇살 드는 창가로 옮겨졌고
묵은 흙을 덜어낸 자리에
조심스레 물이 스며들었다.
푸른 잎은 날마다 아주 조금씩 자랐다.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던 그 모습도
오늘은 더 투명하게 빛났다.
"버려진 자리에서도, 살아 있으려는 마음은 끝내 피어난다."
그 화분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건넸다.
가능성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따뜻한 시선 하나가 생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
어느 날,
누군가 그 화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새로 산 거야?”
아니다.
그건 한때 버려졌던 것이었다.
다만,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시 피어난 생명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엔 버려진 듯 느껴질 수 있지만,
또 어떤 만남은
그를 다시 피어나게 할 햇살이 된다.
세상이 놓친 푸른 잎 하나,
그 작고 단단한 생명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고,
가장 조용한 기적이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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