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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계절, 기도의 손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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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무릎 꿇는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의 혀는 서로를 찢으며,
경제의 심장은 뿌리째 흔들려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시대.
그리고 산불.
산 하나가 타오르고,
마을이 타고,
사람들의 기억이 타고,
마침내 하늘마저 붉게 물든다.
모든 것이 타는 그 자리,
모두가 등을 돌린 그 순간—
그 소녀는, 한없이 작은 몸으로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조용히, 아주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었다.
그 손엔 무엇이 들렸을까.
검은 재를 움켜쥔 손바닥일까.
부서진 희망을 꿰매려는 실밥일까.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일까.
사람들은 몰랐다.
그 조그만 손이
세상의 균열 틈을 막고 있다는 것을.
그 기도가
허물어진 마음의 무너진 벽을
조금씩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연기 속에서도,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도,
그 기도는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지만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었다.
“하나님, 제발 이 세상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 속에 담긴 절절한 염원은
이념을 뛰어넘고, 이익을 지우고,
모든 차이를 지우며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기도는 계속되었다.
불길이 잠잠해지기까지.
울음소리가 잦아들기까지.
잊힌 사람들의 이름이
다시 불려지기까지.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한 소녀의 기도는 뿌리처럼 남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 다른 작은 손이
그녀처럼 무릎 꿇고
이 세상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