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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낚는 사람
김왕식
새벽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숨결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낮게.
세상의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 시간—
누군가는, 낚시 도구를 챙긴다.
조심스럽게.
마치 마음을 꺼내듯, 주섬주섬.
그것은 단지 물고기를 위한 채비가 아니다.
어제의 소음을 벗고,
오늘의 고요를 맞이하려는 의식이다.
그는, 숲 속 저수지로 향한다.
나무들은 잠든 듯 고요하고
물은 속삭이는 듯 잔잔하다.
그 사이를 천천히, 그는 걸어간다.
낚싯대를 든 그의 모습은—
자연 속에 스며든 한 줄기 호흡 같다.
세상과 한 걸음 떨어진 곳.
그곳에서 그는 세월을 낚고자 한다.
낚싯대는 기다림의 언어이고
무딘 바늘은, 삶의 흔적이다.
날카로움은 닳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직—
응시하는 눈빛 하나.
그는, 물가에 앉는다.
물결을 본다.
그러나 실상은, 그 물 너머—
자기 안의 고요를 들여다본다.
한 줄기 바람이 스친다.
그의 어깨에 머물다, 이내 흩어진다.
그도 그 바람처럼
잠시 머물고, 말없이 지나간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낚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돌아선다.
빈손이지만, 가볍다.
그가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고요다.
어쩌면, 자신이다.
현대는, 너무 빠르다.
기다림 없이 결과를 원하고
침묵 없는 대화만을 세련됨이라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안다.
기다림의 미학을.
저수지에 앉아,
바늘 하나 던지는 일.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는 마음을 건져 올리고
침묵을 꿰어낸다.
그 모든 것이—
‘사는 일’이다.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바람과 닮아 있다.
아무 흔적 없이 지나가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고 간다.
소음이 밀려드는 세상 한복판에서도
그는,
그 고요를 기억할 것이다.
과정만으로도 충분했던 하루를.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낚시꾼처럼—
조급히 채비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마음 하나 던져보는 하루.
허무가 걸려와도 좋다.
미소 하나가 따라와도 좋다.
그리고,
가볍게 돌아설 수 있는 삶.
그가 낚은 것은 결국,
우리 모두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자화상일지 모른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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