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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님이 오시는지 ㅡ 소엽 박경숙 시인

by 청람등불 2025. 4. 11.



 

 

 

 

 

 

 

 

 






               님이 오시는지




                               소엽 박경숙





밤새 붉어진 가슴
산당화  송이송이로
피어나네









소엽 박경숙
— 찻물 위에 피어난 천의 얼굴


                                       김왕식

 

 


소엽 박경숙 선생은 단순히 찻집 ‘사발沙鉢’의 주인이 아니다. 그녀는 차 한 잔에 삶의 깊이와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인이자, 자신의 존재로 공간을 빛나게 하는 품격의 사람이다. 그녀의 삶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조용히 피어나는 한 송이 들꽃 같고, 바람마저 쉬어가는 뜨락 같은 따스함을 지녔다.

그녀의 자태는 조용하면서도 우아하다. ‘곱게 쪽진 머리결엔 바람마저 머물다 가고’라는 시구처럼, 그녀의 외면은 절제의 미를 간직하고 있고, 내면은 고요 속에서 더욱 깊은 향기를 머금는다. 그녀의 미소는 가을 이파리처럼 잔잔하며, 그 따스한 기운은 찻물처럼 사람의 마음을 덥힌다.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다관의 김 속에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정성과 품성이 녹아 있다.

‘사발’은 그녀가 가꾸어낸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그곳은 세월과 기억이 머무는 곳이며, 삶의 안식과 치유가 피어나는 공간이다. 누구나 들어설 수 있으나, 아무나 스쳐 지나갈 수는 없는 깊은 여운이 깃든다. 그 이유는 찻집이 가진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품고 있는 박경숙 선생의 고요한 인격, 절제된 언어, 따뜻한 눈빛 때문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발’의 향기이자 정수다.

그녀의 삶의 철학은 ‘차(茶)’라는 조용한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 차는 물을 데우는 일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을 데우는 일로 완성된다. 그녀는 단순히 차를 따르는 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따뜻함을 건네는 이다. 그녀가 따르는 삶의 가치는 ‘비움’과 ‘머묾’이다.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다다름보다 덜어냄으로써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는 삶. 그녀는 그런 삶을 조용히 실천한다.

이처럼 조신하고도 정갈한 그녀의 면모는 마치 조선의 사임당을 떠올리게 한다. 단정하고 절제된 품위, 말없이 삶을 가꾸는 손길,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 하지만 그녀의 세계는 그 단아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박경숙 선생은 천의 얼굴을 가진 이다.

시낭송 대회 왕중왕전 대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정적인 차 문화 속에서도 시의 감성과 예술적 열정을 꽃피운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한 낭송을 넘어서, 시의 맥박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전하는 진정한 울림이다. 그 목소리에는 단련된 무대 감각이 숨어 있다. 젊은 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그녀는, 말의 호흡과 감정의 결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그녀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조용한 기품은 빛나는 생명력으로 변하고, 그녀는 또 다른 얼굴로 관객과 호흡한다.

이처럼 그녀는 찻자리에서 정숙미를 발하고, 무대 위에서는 예술가로서 열정을 피운다. 어느 한 면에 머물지 않고, 삶의 각 층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꽃을 피우는 그녀는 팔방미인이란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도무지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품위를 잃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빛은 그 모든 다재다능함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앞세우지 않고, 늘 고요히 차를 데우듯 삶을 가꾸고 타인을 맞이한다. 그러기에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겉모습보다 더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것은 진정한 인격에서 오는 울림이며, 진심에서 비롯된 여운이다.

박경숙 선생은 빠르고 요란한 세상 속에서도 느리게, 그리고 깊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차 한 잔에 담긴 고요한 시간, 시 한 구절에 담긴 생의 진실, 연극의 숨결 속에 담긴 존재의 떨림.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지니고 있으되 과시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되 사람을 감동시킨다.

오늘도 그녀는 찻물을 끓이며 누군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온기, 그 눈빛에서 전해지는 평온, 그 목소리에서 울려 나오는 시의 향기. 소엽 박경숙 선생은 그러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삶이 곧 한 편의 시이자 예술이 되는 사람. 그녀의 존재는 곧 한 잔의 차처럼, 조용히 그러나 깊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데우고 있다.



ㅡ 청람



 ■
문학평론가 청람 기량 김왕식






박경숙 시인의 '님이 오시는지'는
일본 *하이쿠를 연상케 한다.
단 세 줄, 열아홉 자에 불과하지만 그 여백과 함축 속에 시인의 내면과 미의식, 삶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밤새 붉어진 가슴’은 기다림의 정서를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 구절이다. 밤새 가슴이 붉어졌다는 표현에는 정념이 있지만, 그것은 격정이 아니라 고요히 번지는 붉은빛처럼 절제된 정서다. 이어지는 ‘산당화 송이송이로’는 그 붉어진 감정이 꽃으로 화한 순간을 상징한다. 산당화는 겸손하면서도 고결한 느낌을 주는 꽃으로, 시인의 마음이 욕망이나 소유가 아닌 순결한 환대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 구절 ‘피어나네’는 감탄이 아닌, 사실의 기술처럼 느껴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님이 오시는 그 순간, 이미 마음속엔 꽃이 피었다는 담담한 깨달음이 배어 있다.

시인의 미의식은 이러한 절제와 정갈함에 있다. 붉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꽃으로 피워내는 그녀의 표현은 동양적 심미관, 특히 불교적 선시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감정을 정화시켜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박경숙 시인의 시적 태도다.

이 시는 청람 문학회 회원들을 맞이하는 마음을 담은 환영의 시다. 그러나 ‘님’은 단지 손님이 아니라, 시인의 존재를 향해 다가오는 모든 인연과 생명, 그 숭고한 접속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짧은 시는 한 송이 산당화처럼 소박하지만, 삶 전체를 관통하는 환대의 철학을 담고 있다.

박경숙 시인의 삶은 시와 같다. 군더더기 없고, 단아하며, 진심 어린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힘, 가만히 있어도 피어나는 존재의 향기를 믿는다. 이 시는 그런 그녀의 삶 자체이며, 시와 삶의 경계가 없는 시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시적 증명이다.





* 하이쿠는 일반적으로 총 17음절로 된 3행으로 구성된 일본 시 형식이다.
첫 번째 줄에는 5음절이 있고,
두 번째 줄에는 7음절이 있으며,
세 번째 줄에는 5음절이 있다.

하이쿠는 전통적으로 자연에 중점을 두며 종종 계절 단어(kigo)를 포함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소엽

ㅡ 청람 기량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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