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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불의 계절, 기도의 손

by 청람등불 2025. 4. 12.



 

 

 

 

 

                      불의 계절, 기도의 손

 

                                         김왕식

 

.


한 아이가 무릎 꿇는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의 혀는 서로를 찢으며,
경제의 심장은 뿌리째 흔들려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시대.
그리고 산불.
산 하나가 타오르고,
마을이 타고,
사람들의 기억이 타고,
마침내 하늘마저 붉게 물든다.

모든 것이 타는 그 자리,
모두가 등을 돌린 그 순간—
그 소녀는, 한없이 작은 몸으로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조용히, 아주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었다.

그 손엔 무엇이 들렸을까.
검은 재를 움켜쥔 손바닥일까.
부서진 희망을 꿰매려는 실밥일까.
아니면, 단지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일까.

사람들은 몰랐다.
그 조그만 손이
세상의 균열 틈을 막고 있다는 것을.
그 기도가
허물어진 마음의 무너진 벽을
조금씩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연기 속에서도,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도,
그 기도는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지만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었다.

“하나님, 제발 이 세상을 잊지 말아 주세요.”
 속에 담긴 절절한 염원은
이념을 뛰어넘고, 이익을 지우고,
모든 차이를 지우며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퍼져나갔다.

기도는 계속되었다.
불길이 잠잠해지기까지.
울음소리가 잦아들기까지.
잊힌 사람들의 이름이
다시 불려지기까지.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한 소녀의 기도는 뿌리처럼 남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 다른 작은 손이
그녀처럼 무릎 꿇고
이 세상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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