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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켤레의 인사
현관 앞, 오래된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낡고 조금 찢어진 발등, 그러나 단정히 묶인 끈. 말 대신 하루를 증명하던 자세였다.
그 신발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집 안에서만 신던 그것을 아버지는 늘 문 앞에 나란히 놓으셨다. 마당 한 바퀴를 돌더라도 꼭 그 신발을 신으셨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하루는 늘 시작이었고, 시작에는 인사가 담겼다.
신발을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하루는 얼마나 멀리 가는가 보다 어디를 향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아버지의 걸음은 짧았지만, 언제나 돌아올 길을 향해 있었다. 신발의 방향은 말 없는 다정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병원에 계셨고, 문 앞은 오래도록 비어 있었다. 신발장을 열어 그 신발을 꺼내다 문득 망설였다. 다시 문 앞에 놓았다. 마치 그분이 곧 돌아올 것처럼.
그러나 계절이 바뀌도록 그 신발은 주인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하늘로 먼 길을 떠나셨다.
그날 이후, 신발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현관 앞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돌아올 사람의 그림자를 품은 채, 누구보다 오래, 묵묵히.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먹먹해진다. 문 앞에 서서도 인사를 잊지 않던 사람, 가는 길마저도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듯 떠났던 사람.
오늘도 그 신발은 말없이 속삭인다.
“기다릴게요.”
“다녀오세요.”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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