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럭운전사의 창 너머로 본 세상
안최호
고속도로 위,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를 달린다. 새벽을 깨우고 어둠을 뚫으며 사람들의 생필품과 희망을 나르는 게 내 일이지만, 정작 내 삶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도로는 평평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기울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공정 사회’란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정의를 말하고, 방송에서는 법치와 자유를 외친다. 하지만 정작 거리와 시장, 공장과 시멘트 바닥 위에선 그런 단어들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는 안다. 법이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공정이라는 구호 속에서 가진 자들만이 더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걸.
어떤 지도자는 방어를 명분 삼아 전쟁을 일으키고, 새로운 질서를 말하며 기득권을 굳힌다. 그는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화의 깃발이 아니라 이윤의 계산서다. 고장 난 세상을 수리하려는 게 아니라, 망가진 기계를 팔아먹으려는 상인의 논리처럼 느껴진다.
진정한 지도자는, 내가 생각하기엔, 속도를 내는 이가 아니라 멈춰 설 줄 아는 사람이다. 부러진 갈대를 다시 세워주는 이, 꺼져가는 심지를 조심스레 불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지도자는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다. 강한 이들을 키우기보다, 약한 이들을 먼저 챙긴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트럭 안에서 수많은 삶의 모습을 본다. 땀에 절은 작업복, 매연 속에서 식지 않은 도시락, 눈빛 하나로 하루를 버텨내는 노동자들. 이들이야말로 나라를 지탱하는 진짜 기둥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한 정책은 늘 뒷전이다. 정책은 종이 위에서 화려하지만, 현실은 차디찬 시멘트 바닥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꾼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적어도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나라. 목소리 큰 자가 아니라 진심을 품은 자가 앞에 설 수 있는 세상. 누군가의 고통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리더가 나오는 날을.
내 트럭의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늘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이 길 위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들의 희망이다. 나는 그 희망을 실어 나른다. 오늘도, 내일도.
■
삶의 언저리에서 발견한 느림의 미학 — 안최호 자연인의 글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자연인의 글은 화려한 수식어도, 인위적인 감정 유도도 없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담백함 속에 묵직한 울림이 있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만나는 자연, 산에서 채취한 두릅과 다래순, 해 질 무렵의 고요한 사색—이 모든 것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강물처럼 스며든다.
그는 말한다. “서산 해 질 무렵,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본다.” 이 문장은 단순한 하루의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에 대한 반성과 질문,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조용한 다짐이 담긴 성찰의 언어다.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깨달을 때 느끼는 서글픔은, 아마도 자본과 속도에 쫓겨 살아온 우리 모두의 감정이 아닐까.
자연 속에서 건져 올린 그의 언어는 상처를 핥는 바람 같고, 잊고 지내던 고향의 안부 같다. ‘한 달 중 보름은 길 위에’ 있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생계의 고단함을 넘어, 스스로를 자연의 흐름에 맡기며 사는 한 인간의 겸허한 태도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다시 도시로—그의 이동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가치의 회귀로 읽힌다.
그는 결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소박하게 살고, 자연을 아끼고,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실천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히 되찾아야 할 태도이자 미덕이다. 그의 글은 단순한 수필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보내는 조용한 권유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말 없는 권유.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문득 발길을 멈추게 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그것이 안최호 자연인 글의 진짜 힘이다. 느리게 걸어온 사람이기에, 더 멀리 보고 있는 그 눈빛이, 이 각박한 세상 속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되어 준다.
ㅡ 청람
'청람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2ㅡ3 (0) | 2025.04.19 |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2ㅡ2 (0) | 2025.04.18 |
잿빛 별빛 ㅡ 빛을 마신 사람들 (0) | 2025.04.18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2ㅡ1 (0) | 2025.04.18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1ㅡ5 (0)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