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2ㅡ3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ㅡ여포와 동탁, 패륜의 끝
제2ㅡ3회. 여포와 동탁, 패륜의 끝
― 칼을 가르쳐준 자를 찌른 검
후한 말 조정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다. 십상시의 전횡으로 시작된 내부 붕괴는 황실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동탁은 그 혼란을 틈타 낙양으로 진입해 정권을 장악한다. 그는 어린 황제 소제를 폐위시키고, 헌제를 새로 옹립함으로써 겉으로는 정통성을 확보했지만, 실제로는 무력을 앞세워 모든 권력을 휘둘렀다.
동탁은 권신이자 무도한 독재자였다. 그가 명령하면 충신도, 원로도, 공경도 목숨을 보장받지 못했다. 백성들은 침묵했고, 조정은 칼과 불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런 동탁의 옆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천하제일창 여포(呂布). 그가 동탁의 수하가 된 계기는 간단했다. 동탁이 그의 친부와 같은 의부(義父) 정원을 죽이고 자신을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여포는 위세를 따라갔고, 힘 있는 자를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관계는 진정한 부자(父子)가 아니었다. 정과 신뢰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이익과 명령으로 묶인 관계였다. 여포는 동탁을 '아버지'라 불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과 불신이 자라났다. 한편 왕윤은 이 파열음을 읽어냈다. 조정의 어른이자 지략가였던 왕윤은 동탁을 무너뜨릴 방법으로 여포를 지목했다.
그는 여포의 감정적 결핍과 충동적 성향을 간파하고, 여포의 마음을 흔들 존재로 '초선(貂蟬)'을 내세운다. 그녀는 왕윤의 양녀로, 절세의 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왕윤은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 애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다시 동탁에게도 바친다. 두 남자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여포는 동탁에게 분노하고, 초선에 대한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초선은 여포 앞에서 눈물짓는다. “아버지라 부르던 이가, 나를 욕보이려 합니다.” 그 말은 여포의 마지막 양심을 건드렸다. 이미 분노가 차올랐던 여포는 결국 칼을 빼들고 동탁을 향한다. 왕윤의 계책대로, 거사는 감행된다.
그날 아침, 동탁은 궁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비대한 몸을 이끌고 가던 그 앞을, 여포가 막아선다. 놀란 동탁은 묻는다. “왜 그러느냐?” 여포는 짧게 대답한다. “세상은 이미 그대를 버렸소이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창을 찔러 넣는다. 동탁은, 자신이 믿고 키운 사내의 손에 무너진다. 그 피는 권력의 상징이자, 배신의 대가였다.
동탁이 죽자 백성들은 환호했고, 조정은 일시적인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왕윤은 공신으로 칭송받았고, 여포는 무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불안의 시작이었다. 동탁의 죽음은 조정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권력의 진공을 만들었다.
여포는 정치를 모르는 자였다. 칼은 있었으나 방향은 없었다. 왕윤은 정국을 정비할 인내와 기반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의 중심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여포는 왕윤과 대립하게 되고, 장안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백성은 또다시 피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동탁을 베었던 칼은 칭송받았지만, 그 칼을 든 자는 끝내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없었다. 권력을 무너뜨리는 자가 항상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여포와 동탁, 패륜으로 이어진 정권 교체의 교훈이었다.
□
제2ㅡ3회 삼국지 평
ㅡ여포와 동탁, 패륜의 끝
등장인물 특징
여포(呂布)
무력은 뛰어나나 마음이 가볍고 충동적이다. 동탁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방패가 되었지만, 결국 사랑과 욕망에 휘둘려 칼을 겨눈다. 그는 인간의 배신과 흔들림을 가장 비극적으로 체현한 존재이며, 능력만으로는 인간을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탁(董卓)
폭정의 상징이자 권력을 오직 무력으로만 다스린 자. 여포를 통해 조정을 지배했지만, 정작 그 칼에 스스로 쓰러진다. 신의 없이 맺은 관계는 결국 배신으로 돌아온다는 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자멸한 폭군이었다.
왕윤(王允)
지략은 뛰어나나 끝을 내다보는 힘이 부족한 문신. 동탁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성공시켰지만, 이후 정국을 수습할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순간의 결단은 있었으나, 긴 흐름을 이끌 지도자의 자세는 부족했다.
□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이 회는 ‘신뢰와 배신’이라는 인간사의 오래된 테마를 정면에서 다룬다. 여포와 동탁의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해관계의 연합이었고, 그것이 무너질 때의 파괴력은 더욱 컸다. 오늘날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신뢰는 계약보다 깊은 것이다. 눈앞의 이익이나 감정적 판단으로 신뢰를 저버리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로 이어진다. 또한 왕윤의 행위는 큰 결단이 성공하더라도, 다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온다는 교훈을 준다. 조직은 악을 제거하는 것보다, 대체할 질서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정의란 단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재건의 설계로 이어질 때 비로소 실현된다. 이 회는 인간관계와 권력의 본질에 대해 차갑지만 진실된 시선을 던진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여포의 배신은 삼국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이지만, 그의 내면 묘사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초선에 대한 감정, 동탁과의 갈등,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고뇌 등이 짧게 처리되며, 독자는 여포의 심리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채 결말을 맞게 된다. 초선 역시 극을 움직이는 결정적 인물이지만, 그녀의 주체성이나 감정은 전혀 그려지지 않아 단지 ‘도구’로 소비된다. 왕윤의 정치적 계획도 실행 장면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가 이후 정국을 어떻게 정비하려 했는지는 생략된다. 동탁의 죽음이 조정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는지, 여포가 어떻게 다시 고립되었는지도 간략히 처리되어, 서사의 여운과 정치적 긴장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 극적 전환점임에도 인물의 깊이와 구조적 맥락이 아쉬운 장이다.
ㅡ 청람
'청람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2ㅡ4 (0) | 2025.04.23 |
---|---|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정하라 (0) | 2025.04.23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2ㅡ2 (0) | 2025.04.18 |
트럭운전사의 창 너머로 본 세상 ㅡ 자연인 안최호 (0) | 2025.04.18 |
잿빛 별빛 ㅡ 빛을 마신 사람들 (0) | 202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