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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별빛
빛을 마신 사람들
ㅡ 불빛 하나가 모든 어둠을 없애진 못해도, 누군가의 하루는 밝힐 수 있다
글: 김왕식
도시는
마침내 전쟁을 멈췄다.
어둠은 여전했다.
전기는 끊겼고,
창문은 가려졌고,
사람들의 얼굴엔 여전히
어디에도 불이 켜지지 않은 눈빛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노파가
자신의 오븐에서 쓰던 오래된 등잔 하나를 꺼냈다.
기름은 거의 말라 있었지만,
그녀는 남은 식용유를 조금 붓고
작게 불을 밝혔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렸지만,
그녀의 창문을 지나던 아이 하나가
그 불빛에 얼굴을 비췄다.
다음 날,
아이의 손에
작은 병뚜껑이 달린 양초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사탕을 녹여
초를 만들었다.
그 초는
한 시간도 안 되어 꺼졌지만,
그 빛은
옆집의 귀가 어두운 노인 방까지 번져갔다.
며칠 후,
누군가는 자전거 바퀴에 발전기를 연결해
작은 전구를 켰고,
누군가는
무너진 성당 유리조각을 모아
빛이 반사되는 조명벽을 만들었다.
빛은 커지지 않았지만,
흩어졌던 사람들은
그 빛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빛을 마신 사람들은
변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모른 척하지 않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식탁이 다시 차려졌고,
학교 교실이 문을 열었고,
병든 이를 돌보는 손에
작은 불씨가 얹혔다.
그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함께 만든
‘불빛 광장’이 생겼다.
거기엔 전등이 없었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만든
수백 개의 작은 빛이 놓여 있었다.
캔 속에 심지를 담은 초,
유리병 안에 담긴 반딧불이,
태양광으로 충전한 소형 램프,
그리고…
마음에서 켜진
작은 목소리들.
마을 대표는
광장 한가운데 서서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다시 밝아진 건
큰 불빛 덕분이 아닙니다.
각자의 마음에서
서로를 향해 빛을 건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광장 바닥에
분필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이제
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빛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
작가의 말
잿빛 별빛 시리즈 10편 중 마지막 10번째
작품으로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사람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전쟁, 폭력,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서로를 살리고, 기억하고, 다시 세우는 불빛은
작지만 꺼지지 않습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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