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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수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1ㅡ4

by 청람등불 2025. 4. 15.




삼국지 1ㅡ4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ㅡ십상시와 왕윤의 계책

제1ㅡ4회.
십상시와 왕윤의 계책
― 무너진 조정, 그 안의 암류들

삼국지의 진짜 시작은 칼과 전쟁이 아니라, 말 없는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술수에서 시작된다.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바로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환관 집단이다. 이들은 한나라 조정의 환관 중 열 명의 핵심 권력자로,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부정과 착취로 나라를 병들게 만든다.

십상시는 정치를 장난처럼 다루며, 충신을 내쫓고 간신을 끌어들였다. 대신들은 그들의 권력을 꺼려했고, 백성은 조정을 불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 영제는 병으로 쓰러지고, 환관과 외척, 신하들 간의 권력 암투는 극에 달한다.

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왕윤이 다시 등장한다. 동탁을 끌어들인 초반에는 그 또한 무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만, 이내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왕윤은 또 다른 계책을 꾸민다. 그가 내세운 것은 과거의 권력에 대한 숙청과, 새로운 정치를 위한 내부 정리였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복잡한 권력관계 속에서 환관 세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십상시의 중심인물 장양과 조충 등은 황제를 옮긴다는 명목으로 궁궐을 탈출하고, 이 과정에서 소제는 폐위되고 헌제가 옹립된다. 한편 조조와 원소 등 지방 세력은 이 기회를 ‘십상시 척결’의 명분으로 삼아 점차 중앙정치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해 나간다.

왕윤은 동탁의 제거 이후에도 조정을 회복하려 하지만, 이미 조정은 병들대로 병들어 있었고, 권력의 중심은 허약한 황제 헌제에게서 떠나 있었다. 조정 안의 무수한 파벌, 보이지 않는 배신과 복수의 줄다리기 속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탐욕과 생존만이 남는다.

이 시기, 삼국지의 무대는 조용히, 그러나 뿌리부터 뒤틀리고 있었다.



제1ㅡ4회 삼국지 평
ㅡ십상시와 왕윤의 계책

□ 등장인물 특징

십상시(十常侍)

국가 권력을 사적 이익으로 왜곡한 환관 집단. 황제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사를 농단하고, 정치적 정당성과 민심을 무시한다. 그들은 칼을 들지 않았지만, 조정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가진 자들이었다. 소인배의 권력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보여주는 존재.

왕윤(王允)

연속된 계책으로 권신들을 제거해 나가는 전략가. 그러나 그는 매번 인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한다. 국면을 바꾸는 지혜는 있지만, 흐름을 바꾸는 통찰은 부족하다. 그는 칼의 사람은 아니지만, 칼의 주변에 머문다.

헌제(獻帝)

어린 황제로서 권위는 있으나 권력은 없다. 조정의 상징이었으나 실제로는 누구의 말도 듣지 못하고 모든 사건의 희생양이 된다. 그는 상징과 실체가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정 몰락의 거울 같은 존재다.


□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이 회는 ‘비정상적 권력’이 어떻게 정상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십상시는 법도와 민심을 무시하고 황제를 앞세워 정치의 본령을 왜곡했다. 그들은 칼이 아니라 관계로 권력을 잡았고, 그 결과 나라는 천천히 붕괴되었다. 이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권력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신뢰를 얻거나 잃는다. 또한 왕윤의 계책은 문제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지만, 대안을 만들지 못해 또 다른 혼란을 낳는다. 이는 오늘날 위기를 진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대안 없는 분노와 청산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진정한 변화란, 문제를 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뢰를 세우는 것이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십상시의 몰락 과정은 역사적 전개에 있어 결정적 전환점임에도, 지나치게 사건 중심으로만 서술되어 있다. 독자는 이들이 왜 백성에게 원한을 샀는지, 조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권을 장악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저 ‘악한 무리’로만 제시되며 입체감 없는 집단으로 소비된다. 또한 왕윤은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의 실패와 허술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계책의 성공’만 강조될 뿐, 정치적 구조를 읽지 못한 무게 부족은 성찰되지 않는다. 헌제 역시 ‘상징적인 인물’로 머물며 서사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임에도, 인물의 감정과 제도의 균열을 함께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회는 삼국지 초반의 문학적 밀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