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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수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1ㅡ1

by 청람등불 2025. 4. 15.



삼국지 1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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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 난세의 지혜, 사람의 길 ―



제1회. 황건적의 난과 도원결의
― 난세에 피어난 우정의 맹세 ―

세상은 오래된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할 때, 흔들리기 마련이다. 후한 말의 중국이 그랬다. 황제는 허울뿐이었고, 궁중에는 환관들이 득세했다. 십상시라 불리는 권력자들이 조정을 농락하고 백성을 수탈했다. 산과 들에는 도적 떼가 들끓고, 백성들은 굶주림에 쓰러졌다.

이 혼돈 속에 나타난 이가 바로 장각이다. 그는 '태평도'라는 신흥 종교를 내세워 농민들의 절망을 파고들었다. 장각은 하늘이 바뀔 때가 되었다고 외쳤다. “창천은 이미 죽고, 황천이 이를 것이다(蒼天已死, 黃天當立)”라는 구호 아래, 전국 각지에서 ‘황건적’이 일어났다.

황건적의 난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었다. 시대를 바꾸려는 첫 신호탄이었다. 조정은 급히 지방 호족과 무관들에게 진압을 명령했으나,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각지에서 새로운 영웅들이 떠오른다. 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 한 작은 고을 탁현에서 세 인물이 운명처럼 만난다.

한 사람은 유비(劉備)였다. 헌제의 황실 후손이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짚신과 돗자리를 팔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눈빛은 결연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유비는 말한다. “나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뜻은 없으나,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또 한 사람은 관우(關羽)였다. 붉은 얼굴에 긴 수염, 강한 정의감을 지닌 사내였다. 의로움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 마지막은 장비(張飛), 불같은 성격에 우렁찬 웃음소리, 그러나 진심만은 그 누구보다 따뜻한 사내였다.

세 사람은 탁현의 술집에서 처음 만났고, 뜻이 통했다. 어지러운 세상, 백성의 고통을 보며 침묵할 수 없었던 그들은 의기투합한다. 마침내 복숭아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제단을 세우고 하늘에 맹세한다.
이 장면이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은 ‘도원결의(桃園結義)’다.

 “우리 세 사람은 같은 날 태어나진 못했으나, 같은 날 죽기를 원하노라!”

그들의 맹세는 단순한 우정의 약속이 아니었다. 이 시대를 함께 견디겠다는 결의였고,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후 유비는 소수의 의병을 이끌고 황건적과 맞서 싸우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 비록 조정은 그의 공을 시기해 큰 자리를 주지 않았지만, 유비는 낙심하지 않았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형처럼 따르며 생사를 함께 한다.

황건적의 난은 결국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세상에 물음을 던졌다. “누가 백성을 위한 정치인가?”
이 질문은 이후 삼국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

이제 조조가 움직일 것이며, 여포가 등장할 것이다. 손견은 강동의 불을 피우고, 제국은 삼등분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모든 시작은 이 세 사람의 우정에서 비롯되었다. 난세에 피어난 의(義)의 씨앗이었다.



 

제1회 삼국지 평론


□ 주요 인물 특징

유비(劉備)
가난한 황실 후손으로 출신보다 사람됨이 먼저인 인물이다. 조용한 결기와 겸손 속에 ‘민심’이라는 깊은 시야를 품었다. 천하를 쥐고자 하기보다 함께 나아가고자 했고, 그 중심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유비는 대의(大義)를 품고, 현실의 바닥에서 시작한 리더다.

관우(關羽)
붉은 얼굴과 긴 수염처럼 상징성이 강한 인물로, 의리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도의에 목숨을 걸며, 싸움보다 신의를 더 중히 여겼다. 그의 곧은 성품은 사랑과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관우는 명분을 행동으로 증명한 ‘살아 있는 신화’다.

장비(張飛)
거칠고 충동적인 성격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깊고 의롭다. 전장에서의 용맹은 물론, 위기의 순간마다 형제를 지키려는 투박한 진심이 드러난다. 장비는 격정의 인간이자, 정직한 사랑을 품은 동료의 얼굴이다. 강인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의 상징이다.


□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도원결의는 단순한 의형제의 맹세가 아니다. 각기 다른 환경과 성격의 세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하나의 뜻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다. 오늘날 공동체는 종종 목표보다 ‘나와 맞는 사람’을 먼저 찾는다. 그러나 이들은 ‘뜻이 맞는 사람’을 선택했다. 출신이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길이 다르더라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이유는 ‘진심’ 하나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능력보다 마음의 방향성이다. 도원결의는 ‘혼자가 아닌 함께’를 선택한 첫 번째 선언이자, 신뢰와 헌신이 동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도원결의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설정이기에, 오히려 현실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세 사람이 처음 만나 단 하루 만에 목숨을 건 의형제를 맺는 전개는 극적이지만, 인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관우와 장비는 처음부터 유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개별 인물의 내면이나 갈등보다는 일방적인 충성심에 초점이 맞춰진다. 유비 역시 사람을 얻는 미덕은 있지만, 그에 앞서 독자적 의지나 내면적 고뇌에 대한 묘사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의리의 형상화’라는 인물 설정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역사 속 인물과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조금 더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