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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의 시 한 줄
늦은 오후였다.
작은 산골 마을에 봄이 슬며시 찾아오던 날, 달삼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스승의 방으로 들어섰다. 아랫목에는 따뜻한 찻물이 끓고 있었고, 벽엔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스승님, 시는 왜 써야 하고 읽어야 하나요?”
달삼의 물음에 스승은 찻잔을 건네며 미소 지었다.
“달삼아, 시는 말이 안 되는 마음에 말을 붙여주는 거란다.”
“말이 안 되는 마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스승은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음엔 가끔, 설명도 안 되고 이유도 없는 감정이 생기지. 기쁨도 슬픔도, 때로는 외로움도. 그런 마음을 꺼내어 다듬는 게 시란다. 말로 하긴 어렵지만, 짧은 시 한 줄이 그런 마음을 잘 대신해 주지.”
달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도 예전에 한 시를 읽고 울컥했던 적이 있어요. 그날따라 그 시가 꼭 제 얘기 같았거든요.”
“그게 바로 시의 힘이란다. 시는 삶의 속도를 멈추게 해. 바쁜 하루 속에서 시 한 편은 쉼표가 되어 주지.”
방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창밖에선 참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스승은 다시 찻잔을 들며 물었다.
“달삼아, 너는 어떤 사물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니?”
“음... 낙엽 떨어지는 걸 보면 좀 쓸쓸하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 따뜻해져요.”
“그 감정이 바로 시의 씨앗이란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 느낌 그대로 글로 옮기면 시가 되지.”
달삼은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 말솜씨도 없고, 시인도 아니고... 괜히 어설프게 쓰는 것 같아요.”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시를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진짜 마음으로 쓰는 게 중요하지.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자기 마음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해. 시는 누구나의 것이거든.”
“아이들에게도 시가 좋을까요?”
“아이들일수록 더 좋지. 상상력이 자라고,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니까. 시는 언어 감각을 키우는 가장 좋은 길이지.”
달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또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시가 정말 삶에 도움이 되나요? 실용적인 건 아니잖아요.”
스승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밥은 안 되지만 마음의 밥이 된단다. 시는 위로가 되고, 혼자인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어주지.”
달삼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시... 마음의 밥... 정말 그렇네요.”
“그래. 시는 없어도 살 순 있지만, 있으면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지. 시는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말이란다.”
밖에선 매화꽃이 하나둘 피고 있었다. 찻잔 속 김이 사라지자, 달삼은 조심스레 일어나 말했다.
“스승님, 저도 오늘부터 시를 써볼게요. 잘 쓰지 않아도... 제 마음 그대로.”
스승은 그 말을 듣고,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달삼아. 그 마음이 바로 시다.”
밖에선 매화꽃이 하나둘 피고 있었다. 찻잔 속 김이 사라지자, 달삼은 조심스레 일어나 말했다.
“스승님, 저도 오늘부터 시를 써볼게요. 잘 쓰지 않아도... 제 마음 그대로.”
스승은 그 말을 듣고,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달삼아. 그 마음이 바로 시다.”
그날 저녁, 달삼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며 길가의 매화를 바라보았다. 바람 한 줄기에 꽃잎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는 멈춰 서서 조용히 속삭였다.
“매화도 말을 하네요, 오늘은...”
그 한마디가 시가 되어, 달삼의 마음 한 귀퉁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시작이었다. 말이 되지 않던 마음이, 이제 말이 되려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 달삼은 알았다. 시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조용히, 따뜻하게,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봄꽃 같은 말이라는 것을.
찻잔 속의 시 한 줄처럼.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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