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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종이 위의 그림자
시는
돌멩이 하나, 강물에 던져본 일
반드시 파문이 번져야 하는 건 아니었다
천상병은 구름을 주워 담았고
이상은 꿈의 골목을 걸었으며
서정주는 바람의 무릎에 귀를 댔다
그들은
큰 뜻 없이 쓴 듯,
그러나 그 잉크는 별처럼 빛났다
시는 연필심 같다
쉽게 부러지지만
잠깐의 어둠을 남긴다
유명세란
비 오는 날 대문에 걸린 현수막
젖으면 지워지고, 바람 불면 찢긴다
무명작가의 시도
빛나지 않아도
돌 속에 감춰진 금맥처럼 깊다
종이 위에 눌러앉은 그 문장들
하얀 눈 위에 남은 짐승의 발자국처럼
잠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시는 결국
하루의 그림자를 모아
가만히 접어두는 일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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