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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 등 돌린 깊은 밤,
봄비는 진실을 두드리고,
민심은 담장 너머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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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三更의 빗소리
ㅡ 이 땅의 울음일까?
청람 김왕식
삼경三更이다. 시간의 끝자락에 선 창밖, 봄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의 깊은 근심처럼, 밤새 창틀을 두드리며 말을 건넨다. 꽃이 필 줄 알았던 계절이지만, 피어나야 할 자리마다 눅눅한 기척만 어른거린다. 저 비는 과연 봄비일까, 아니면 이 땅의 울음일까.
길 잃은 나비처럼 부유하는 민심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표류한다. 빗물에 젖은 담쟁이는 담장을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어쩌면 그 담장은 수많은 약속으로 쌓아 올린 허울일지도 모른다. 그 위에 핀 말장난의 꽃들은 낮에는 웃고 밤이면 시든다. 누군가는 민중을 위해 일한다 했지만, 그 손은 주머니 속에서만 분주하다.
비는 진실을 묻는다. 누가 진정 이 나라의 주인인가. 외침은 줄었고, 속삭임은 많아졌다. 봄비조차 밤잠을 설친다. 제 몸을 떨며 땅을 어루만지며, 다가올 아침을 엿보는 듯하다. 그러나 동녘은 아직도 어둡고, 들판에는 희망의 싹이 움트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도 씨를 뿌린다. 비웃음을 참으며, 침묵으로 진실을 전한다. 말 대신 흙을 일구고, 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정녕,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가?”□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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