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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껍데기는 가라 ㅡ 신동엽

by 청람등불 2025. 4. 10.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신동엽 시인(1930~1969)은 충청남도 부여 출신으로, 20세기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민족의식과 현실인식을 가장 강하게 드러낸 저항 시인 중 한 명이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하고 교직에 몸담으며 문학 활동을 지속하였고, 196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의 시는 민족과 민중을 대변하는 강한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그의 삶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과 ‘민족’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이승만 정권의 억압과 4.19 혁명,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며, 단순한 감상적 서정이 아닌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하는 시를 지향했다.

신동엽의 시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날카롭게 구분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외형과 허울, 제도와 억압을 껍데기로 보고, 민중의 진실한 삶과 사랑, 피와 땀을 알맹이로 보았다. 그의 시세계는 단순한 저항의 외침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아름답고 존엄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한 철학적 깊이를 지닌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민중문학, 참여시의 길을 개척하며, "시를 통해 세상과 싸우고 사랑한다"는 문학적 태도를 후대에 전해주었다.

이 시는 신동엽 시인의 대표적인 참여시로, ‘껍데기’라는 상징을 통해 시대의 위선과 허위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동시에 ‘알맹이’라는 단어로 진정성 있는 삶의 가치를 선명히 제시한다.

첫 연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는 4.19 혁명을 지칭한다. 4월은 자유를 외쳤던 민중의 외침이 있었던 달이지만, 이후에는 정치적 기만과 혼란이 따랐다. 시인은 그중 ‘알맹이’만 남기를 소망한다. 즉, 진정한 자유와 정의, 민중의 염원만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두 번째 연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는 동학혁명의 장소와 정신을 환기한다. 곰나루는 공주 근처로 동학 농민군이 처참히 학살당한 역사의 현장이다. 시인은 그 역사의 진실, 민중의 아우성은 기억하되, 권력의 포장된 껍질은 벗겨지기를 원한다.

세 번째 연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는 시 전체를 이끄는 반복적 리듬을 강화하면서, 독자에게 지속적인 각성을 요구한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거듭된 요청이자 다짐이다.

중반부에서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 아사달 아사녀”는 신화를 빌려온 상징이다. 남녀의 성적 상호 개방과 헌신, 순수한 인간적 사랑을 의미한다.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는 정치적 이념이나 계급적 차별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말한다.

마지막 연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남북의 통일 염원과 더불어, 무기와 폭력의 종식을 소망한다. 향기로운 흙가슴은 노동과 땀, 생명과 평화를 뜻하며, 쇠붙이는 전쟁과 억압의 상징이다.

이 시는 어려운 철학이나 수사 없이도 반복과 상징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껍데기는 가라”는 한 시대의 외침이자,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경고이다. 시인은 사랑과 자유, 평등을 향한 인간 본연의 가치를 믿었고, 껍데기를 벗긴 진실의 시를 통해 그것을 드러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