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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슬픈 노래
시인 서재용
이 산 저 산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은 눈물도
슬픔도 없어 좋겠다
저마다
아름다움 뽐낼 때
양지바른 묘지 옆
키 작은 할미꽃 하나
늙기도 서럽거늘
그대 할미꽃의
눈물을 아는가?
바람도 햇살도
마음에 담아두면
얼룩진 상처 흔들고
까맣게 속 태울 때 있다
아무리 영롱한 아침
이슬도 마음밭에 품으면
슬픈 눈물이 되고
아무리 깊고 예쁜 사랑도
지나간 후 상처가 되고
추억이 되기도 하니
연연하지 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게 보내줘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서재용 시인의 '어느 시인의 슬픈 노래'는 찬란한 봄꽃을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과 존재의 슬픔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시이다. 피어나는 봄꽃들을 향해 “눈물도 슬픔도 없어 좋겠다”라고 토로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단지 자연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 세상의 불의에 상처 입은 자의 고독한 탄식이기도 하다. 이산 저산을 물들이는 꽃들은 그저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양지바른 묘지 곁에 피어난 “키 작은 할미꽃”은 잊힌 진실을 지키는 이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늙기도 서럽거늘 그대 할미꽃의 눈물을 아는가?”라는 물음은, 늙은 꽃이 아닌 시든 정의, 외면당한 진실, 그리고 헌법적 질서 앞에 고뇌하는 한 시인의 내면을 암시한다. 여기서 ‘할미꽃’은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조용히 진실을 품고 있는 존재, 바로 시인의 자화상이자 상처 입은 국가의 초상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깊게 새겨진 상처처럼, “바람도 햇살도 마음에 담아두면 까맣게 속 태울 때”가 있고, 영롱한 이슬조차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고백은, 어느 시인의 시대 인식과 민감한 감수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의 진심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이 아닌, 진실의 왜곡과 정의의 부재 앞에서 느끼는 깊은 탄식을 봄의 이미지로 포장한 데 있다. “지나간 사랑도 상처가 되고 추억이 된다”는 대목은, 바른 것을 따랐던 이들이 모욕당하고, 옳았던 말이 왜곡되어 역사 속에 잊힐까 두려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연연하지 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려보내라 충고하며, 고통의 순환 속에서도 자기를 다스리고 본질을 지키는 ‘아름다운 체념’을 권유한다.
서재용 시인의 시는 아름다움 속에 슬픔을, 풍경 속에 진실을 새기는 고도의 미학을 실천한다. 정치적 탄압이나 왜곡 앞에서도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과 존재의 이미지를 통해 깊은 상징과 사유를 구현한다. 이는 단순한 감성의 시가 아니라, 시대의 비극을 견디는 예술가의 양심이며, 진실은 언젠가 강물처럼 흐른다는 믿음을 품은 정신의 기도이다. 눈부신 봄꽃 사이, 외롭게 핀 할미꽃 하나가 말없이 전하는 이 진실이야말로, 시인의 고결한 미의식이며 시심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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