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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수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3ㅡ1

by 청람등불 2025. 4. 24.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제3ㅡ1회 유비, 유표 밑에서 숨 고르다




제3ㅡ1회. 유비, 유표 밑에서 숨 고르다
― 작은 그늘 아래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사람


관도대전의 전운이 중원에 드리워질 무렵, 유비는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조조와 원소의 거대한 대립에서 비켜난 유비는, 북으로도 남으로도 가지 못한 채 형주(荊州)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한다.

형주는 당시 강남과 중원을 잇는 전략 요충지로, 유표는 그곳에서 나름대로 온건하고 학문 중심의 통치를 펼치고 있었다. 유비는 정치적 망명자였지만, 유표는 그를 경계하기보다 의외로 환대했다. 이는 유표가 유비의 인품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조조의 북방세력에 맞서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유비는 형주에서 정치적 휴식기를 맞는다. 그의 일행—관우, 장비, 조운—은 그곳에서 병력을 재정비하고 민심을 다독이며 잠시 숨을 고른다. 하지만 이 시기는 단순한 정체가 아니었다. 유비는 이곳에서 ‘천하 경륜’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병법서를 다시 읽고, 백성과의 교류를 통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 사이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고 중원을 장악한다. 조조는 유비가 형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느낀다. 그는 유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천자의 명’을 내세워 헌제의 조칙을 가장하고 사자를 보낸다. 유비는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조조의 품에 안기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다. “나는 백성과 함께 걷는 길을 택하겠다.”

유비는 유표의 조정에서 군사적 역할보다는 정치적 명분을 다지는 데 집중한다. 당시 유표의 조정 내부는 복잡했다. 유표의 아들 유기와 유종 간의 후계 다툼, 채모를 중심으로 한 중신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유비는 신중하게 움직이며 조정의 균형추로 존재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선 듯 보였지만, 실상은 큰 걸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정체처럼 보인 이 시기는, 유비가 ‘의(義)’를 관념이 아니라 실제 정치로 엮어내는 시간이었다.




제3ㅡ1회 삼국지 평

유비, 유표 밑에서 숨 고르다




■ 등장인물 특징

유비(劉備)

패주(敗走)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 인물. 형주라는 그늘 아래 잠시 몸을 낮췄지만, 그 속에서도 인의(仁義)를 다지고 경륜을 익혔다. 그의 진가는 전장에서보다, 평시의 기다림 속에서 더 빛난다. 고요한 품성 속에 큰길을 숨긴 사람이다.

유표(劉表)

형주를 다스리는 온건한 지방 세력가. 학문과 예를 중시하며 무력보다는 안정적 질서를 중시했다. 유비를 환대했지만, 동시에 깊은 경계심도 가졌다. 인자했지만 결단력은 부족했고, 내부 권력 다툼을 조정하지 못한 채 점차 쇠락해 간 인물이다.

채모(蔡瑁)

유표의 중신이자 형주 실세. 유비를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견제했다. 강한 정치 감각과 가문 중심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큰 흐름을 보지 못한 채 결국 시대의 조류에 밀리게 된다. 보수의 상징이자 체제 고수자의 전형.




■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유비가 형주에서 보낸 시간은 ‘정치적 인내’의 표본이다. 현실의 벽 앞에서 단기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시간을 아끼고 민심을 읽으며 내실을 다진 그의 태도는 리더가 위기에 대처하는 모범이 된다. 오늘날에도 조직에서 큰 위기를 겪었을 때, 유비처럼 조급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며 방향을 찾는 리더가 필요하다. 또한 유표 밑에서의 유비는 ‘공간을 빌려 명분을 쌓는 법’을 보여준다.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임을, 유비는 말없이 증명했다. 조조처럼 공격하지 않고도, 유비는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간다. 삶에는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춤과 숙고도 그 자체로 전진일 수 있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이 회의 유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지만, 서사에서는 지나치게 ‘머무는 자’로만 그려진다. 형주에서의 활동이나 유표 조정 내의 긴장 관계, 유비의 내부 갈등은 표면적으로만 제시된다. 유표와의 정치적 긴장, 채모와의 갈등, 유종과 유기의 후계 다툼 등은 모두 드라마적 장치가 될 수 있었지만 간략히 흐르고 만다. 특히 유비가 이 시기에 어떤 사상적 전환을 겪었는지, 이후 제갈량을 맞이하기 위한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내면 성숙이 잘 드러났다면, 단순한 피신기가 아닌 정치 철학의 싹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장은 정적이지만 중요한 국면이기에, 더욱 섬세한 문학적 묘사가 아쉬움을 남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