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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과 시문학

낙화 ㅡ 시인 허태기

by 청람등불 2025. 4. 23.






                  낙화



                       시인 허태기



그리워 꽃잎 하나 띄워 봅니다
임 오실까 여기저기 꽃잎 띄웁니다
찢어지고 흩어져 뼈만 남을지라도
떨어진 꽃잎 딛고 찾아 주시오면

설혹 실망하여 발길 돌릴지라도
저려 밟힌 아픔만으로도
임의 사랑 넘치게 받았으니
한 점 원망도 아니하겠습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태기 시인의 '낙화'는 생의 마무리 혹은 관계의 끝에서조차 ‘사랑’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시인의 따뜻한 내면 철학이 깃든 작품이다. 이 시는 꽃잎을 매개로 하여 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기다림 속의 상처와 고통마저도 기꺼이 품으려는 태도를 통해 삶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내면의 순결한 미학을 드러낸다.

‘그리워 꽃잎 하나 띄워 봅니다’는 문장은 무언가를 잃고도 여전히 희망을 거두지 않은 시인의 마음을 상징한다. 여기서 꽃잎은 헌신의 상징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간절함을 접지 않은 채 임을 기다리는 존재의 맑은 자세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찢어지고 흩어져 뼈만 남을지라도’라는 구절은 존재가 파괴되어도 사랑의 본질만은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하며, 이는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의 감정을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품고 가려는 시인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이 시가 돋보이는 지점은 바로 고통조차 사랑으로 수렴하는 시선이다. ‘저려 밟힌 아픔만으로도 임의 사랑 넘치게 받았으니’라는 진술은 희생의 미학을 넘어선 사랑의 절정이다. 결과보다 과정의 진정성을 중시하며, 자신이 받은 사랑의 총량을 마음 깊이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허태기 시인의 미의식이 단순한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체념 속에서도 숭고함을 추구하는 자세임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이 시에는 허무가 아닌 감사의 정서가 흐른다. 꽃잎이 낙화하고 임이 오지 않아도, 사랑했기에 후회 없다는 고백은 시인의 삶 전체가 얼마나 ‘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스스로 또 다른 사랑으로 환원하는 삶’이었는지를 은유한다. 허태기 시인의 시 세계는 사랑과 상처, 기다림과 끝맺음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품에서 비롯되며, 그것이야말로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의 근원이라 하겠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