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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고인 고향
시인 변희자
달빛이 내를 건너와
풀잎에 내려앉는 숲길
은빛 가냘픈 빛결 따라
산새가 날개 다듬고
숲 뜰에는 바람도
소곤소곤 노래를 한다
그곳 너른 푸른 들녘
숲을 낀 돌담 아래
가만히 귀 기울이면
비단금침 스치는 꿈결
아련하여라
달빛보다 더 다정한
고향 숨결이 흐르고 있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이 시는 단순한 고향의 풍경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움의 중심에 ‘임’이 있음을 조용히 밝혀내는 작품이다. 달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임을 향한 마음이 길을 건너와 닿는 정서적 매개로 작용한다.
“달빛이 내를 건너와 / 풀잎에 내려앉는 숲길”은 그리운 이를 향한 감정이 고요히 퍼져가는 풍경화와도 같고, 마음이 가닿는 길목으로 읽힌다.
시 전체에 흐르는 정서는 풍경의 묘사보다 그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기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새의 날갯짓, 바람의 속삭임, 비단금침 스치는 꿈결—이 모두는 ‘그 사람’이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 같은 뭉클한 상상이다.
시인은 말을 아끼지만, “달빛보다 더 다정한 / 고향 숨결이 흐르고 있다”는 구절을 통해 임의 존재를 명확히 암시한다.
달빛과 고향, 그리고 임은 삼중의 은유 구조를 이루며, 시인은 그 속에서 ‘가슴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용히 읊조린다. 고향은 단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사랑이 머물던 장소이며, 그리움이 되살아나는 기억의 집이다. 결국 이 시는 고향을 향하는 동시에, 그 속에 있는 ‘그 사람’을 향한 연모이자, 가슴 깊이 간직한 임에 대한 영혼의 인사다.
변희자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향이라는 배경 속에 그리운 임의 숨결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마음의 귀소 본능과 사랑의 영속성을 아름답고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라, 사랑이 깃든 풍경에 대한 시적 기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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