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 '수필부문' 수상 등단, '평론부문' 수상 등단, '시부문' 수상 등단, 한국문학신문 공모 평론부문 대상 수상

분류 전체보기103

신발 한 켤레의 인사 ■ 신발 한 켤레의 인사 현관 앞, 오래된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낡고 조금 찢어진 발등, 그러나 단정히 묶인 끈. 말 대신 하루를 증명하던 자세였다.그 신발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집 안에서만 신던 그것을 아버지는 늘 문 앞에 나란히 놓으셨다. 마당 한 바퀴를 돌더라도 꼭 그 신발을 신으셨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하루는 늘 시작이었고, 시작에는 인사가 담겼다.신발을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하루는 얼마나 멀리 가는가 보다 어디를 향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아버지의 걸음은 짧았지만, 언제나 돌아올 길을 향해 있었다. 신발의 방향은 말 없는 다정함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병원에 계셨.. 2025. 4. 14.
낡은 구두의 말 ■ 낡은 구두의 말 김왕식신발장 구석, 빛바랜 갈색 구두 한 켤레.굽은 닳고 앞코는 긁히고 가죽은 주름졌다.버리자니 손에 밴 온기가 아쉽고,신자니 남의 눈이 걸리는 그 세월의 짝이었다.어느 날 문득, 손이 갔다.솔로 먼지를 털고, 헝겊으로 문지르며묵은 침묵을 닦아냈다.굽엔 조심스레 본드를 발랐다.발에 넣자마자, 낯익은 편안함이 되살아났다.오래된 그 구두는 여전히 발을 기억하고 있었다.거리로 나서자, 기억들이 발끝에서 깨어났다.첫 출근길의 긴장, 데이트하던 오후의 설렘,차분히 아버지 제사에 가던 날의 정적,그리고, 말없이 퇴직하던 그날의 허전함.그 모든 굽이마다구두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한숨도, 미소도, 망설임도,시.. 2025. 4. 14.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어느 고즈넉한 봄날,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꽃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 달삼은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내음과 새들의 노랫소리는 두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깊은 사색 속으로 이끌었다. 이 길 위에서 그들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 인생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스승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달삼은 조심스레 물으며, 자신의 내면에 품은 수많은 의문들을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듯했다.스승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달삼아, 진정으로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란다. 욕망에 끌.. 2025. 4. 13.
청람서루 방문기 ㅡ 시인 변희자 ■ 청람서루 방문기 시인 변희자어제까지만 해도 얇게 입으면 몸이 움츠러들었었다. 아직 아기 봄바람이따뜻한 가슴에 깃들려 하려는 것일 게다.오늘은 아기 봄바람 따뜻이 품고 친구와 일산을 가는 날이다. 마음 맞는 친구와의 봄나들이다. 친구의 핸드폰 문자가 떴다. 승강장으로 전철이 가고 있고, 3칸 1열에 앉아 있다고 한다.경쾌하고 느리게 다가오는 전철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틈으로보이는 친구의 모습 환한 웃음이꽃향기로 봄바람처럼 전해왔다.전철에 나란히 앉아 마주 보고 가볍게 안부를 묻고 주의 사람들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간이 뒤로 가며 추억은 쌓이고 전철은 앞으로 앞으로 제 나아갈 길 서두름이 없다. 이 순간 이야기.. 2025. 4. 13.
문학, 상처 위에 피어난 연대의 언어 ■             문학, 상처 위에 피어난 연대의 언어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경사이자, 작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돌아보아야 할 문화적 이정표다.그러나 수상 이후 일부 보수 진영에서 작품에 담긴 역사적 해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문학이 정치의 그림자 아래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보수의 우려는 가볍게 여겨져선 안 된다. 그들의 상처는 오랜 세월 이념 갈등 속에서 반복된 오해와 누적된 분열의 기억 속에 뿌리내려 있다. 특히 소년이 온다>와 같은 작품이 한국 현대사 속의 비극을 다룰 때, 그 서술의 방향이 편향되어 있거나 일방적이라 느끼는 이들에게는 문학이 공감보다는 배제의 언어로 다가올 수 있다. 그들은 문학이.. 2025. 4. 13.
기우제 ㅡ 시인 변희자 ■ 기우제 시인 변희자정말 무서워요하늘님이 땅이 타들어 가요나무ㆍ집ㆍ절ㆍ사람들까지 사라지고 있어요그곳엔슬픈 일이 없나요제발 울어 주세요눈물로 대지를 적셔불길을 씻어 주세요■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변희자 시인의 '기우제'는 단순한 ‘비를 기원하는 기도’의 차원을 넘어서, 극심한 재난 속에서 인간이 하늘에 바치는 절박한 호소문이다. 경상남북도를 휩쓴 거대한 산불, 그것이 삼켜버린 자연과 집, 공동체와 생명 앞에서, 시인은 한 줄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정말 무서워요”라는 고백은 어린아이처럼 순전하면서도, 절망 앞에 선 인간의 본능적 떨림을 드러낸다.“하늘님”이라 부르는 존재는 종교적 신일 수도, 자연의 질서일 수.. 202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