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나무의자
나무의자는 오래 앉을수록 더 편해진다. 반듯하지만 억세지 않고, 조용하지만 품이 넓다. 나뭇결 속에 스민 온기와 삐걱이는 소리는,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시간의 흔적이다. 비록 낡고 삐걱거리더라도, 누군가가 앉아 주기만 하면 언제나 제 자리를 내주는 존재. 나무의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다림’과 ‘받아냄’을 가르쳐준다.
□
해 질 무렵, 달삼은 마당 한 켠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등받이, 한 쪽 다리가 살짝 짧아 흔들리는 균형. 오래된 의자였다.
“스승님, 이 의자는 삐걱거리긴 해도 이상하게 정이 가요.”
스승도 조용히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준 의자기 때문이지. 낡았다는 건 쓸모를 다했다는 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견뎌냈다는 뜻이야.”
“요즘은 인조가죽 소파처럼 말랑하고 멋진 의자들이 많은데, 왜 이 나무의자는 더 편안하게 느껴질까요?”
“진짜 편안함은 겉에서 오는 게 아니야. 마음이 놓이는 자리가 진짜 자리지. 이 의자는 손때와 기억, 바람과 계절을 다 안고 있어. 그래서 앉는 순간 몸도 마음도 내려앉는 거야.”
달삼은 등을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
“이 의자엔 누구누구가 앉았을까요? 할아버지, 할머니, 고양이도 앉았겠죠.”
스승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 누군가 비 오는 날에도, 외로운 날에도, 기쁜 날에도 앉았을 거야. 의자는 사람보다 먼저 기억하고 오래 간직하지. 말은 잊혀도, 앉았던 자국은 사라지지 않아.”
잠시 바람이 불고, 의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소리마저도 귀에 익었다.
“스승님,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도 왠지 위로가 돼요.”
“그건 의자가 자기 존재를 말하는 방식이야. 소리 내며 묵묵히 버티는 거지.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어. 말은 없지만, 그 자리에 오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곁은 참 편안해.”
달삼은 무릎 위로 손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의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대도 되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이면 이미 절반은 됐지. 중요한 건 화려하지 않아도, 편안할 수 있는 사람. 언제 앉아도, 아무 말 없이 등을 받쳐주는 사람이 가장 깊은 자리를 만드는 법이야.”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의자 다리 밑으로 길게 드리웠다.
“스승님, 이 의자도 언젠간 버려질까요?”
스승은 조용히 대답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허나 정말 중요한 건, 이 의자에 앉았던 마음들이야. 그건 어디에든 남아. 사람의 자리는 물건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이어지는 거니까.”
달삼은 다시 한 번 등을 기대며,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의자는 말이 없었지만, 오늘 하루도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고 있었다.
□
나무의자는 오래될수록 사람을 더 편하게 만든다. 쓰임보다 기다림이 먼저이고, 겉모습보다 내어주는 자리가 중요하다.
달삼은 깨달았다.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자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오래도록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등받이 같은 존재이기를 조용히 바랐다.
삐걱거려도 좋다. 단지 한 사람의 마음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다면, 그 자리면 충분하다.
ㅡ 청람 김왕식

'청람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 상처 위에 피어난 연대의 언어 (0) | 2025.04.13 |
---|---|
햇살을 닮은 사람, 엘리너 (0) | 2025.04.11 |
3.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빈 그릇 2화 (0) | 2025.04.11 |
2.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골목길 1화 (0) | 2025.04.11 |
1.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서문 Prologue (0) | 2025.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