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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의 바람으로 띄우는 글
ㅡ시인 주광일을 기리며
청람 김왕식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곧 한 시대의 빛나는 족적이 된다면, 주광일 시인은 바로 그 ‘바람’과 같은 존재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라는 엘리트의 길, 재학 중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검사의 길을 걸어 서울고검장, 고충처리위원장까지 국가의 중책을 두루 수행한 그는 행정과 법률의 최고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러한 외형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삶 깊숙한 곳에는, 조국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과 시를 향한 순결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경기고 시절, 석학 이어령 선생의 총애를 받으며 ‘시인’으로 명명된 그는, 그 이후로도 평생 시를 품고 살아온 원로 문인이자 정신의 탐구자였다. 한쪽으로는 법의 냉정한 잣대를 들고 정의를 세우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의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어루만져 온 그. 이는 곧 강철과 꽃, 논리와 감성, 이성과 사랑이 조화를 이룬 보기 드문 인격의 완성이다.
그의 시 세계는 애국애족의 심지가 중심을 이루되, 결코 무겁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시 '삼월의 바람'은 그의 서정성과 인생관이 오롯이 담긴 수작이다.
삼월의 바람
삼 월의 들판을
들새처럼 날며
맘껏 휘젓고 있는
풀빛 바람
새살 돋듯 움트는
새싹의 소식을
살며시 전해주네
아직은 목도리와
장갑이 필요한
이른 봄날
나는 훈훈한 바람 되어
머나먼 그곳
내 님의 귓가를 감싸는
위로가 되고 싶네
초기 봄 들판을 날며 희망을 전하는 바람의 형상은 그의 시적 자아이자 삶의 자세를 닮아 있다. “내 님의 귓가를 감싸는 위로가 되고 싶네”라는 소망은 단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닌, 이 땅의 국민 모두에게 전하고픈 그의 따뜻한 위로다. 광화문 거리에서 고단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시대의 방향을 바로잡고자 한 노년의 외침 속에도, 그는 결코 혐오로 말하지 않고 서정으로 노래한다.
오늘날, 극한의 이념 대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우리는 주광일 시인이 견지하는 균형의 미학, 품격 있는 사랑, 그리고 고요한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빚어낸 정결한 울림이다. 오랜 공직 생활과 시인으로서의 길이 평행선을 그리지 않고 하나의 선으로 만나는 것은, 그가 지켜온 신념과 사랑이 본래 둘이 아닌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0.1%의 삶을 산 지도자이자, 100%의 마음으로 민족을 품은 시인이다. 이 시대가 지닌 모든 혼란의 틈에서, 주광일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바람처럼 불어와 진실을 속삭이고, 정의를 지향하며, 사랑을 전한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 나라의 품격이자, 우리 세대가 본받아야 할 정신의 거울이다.
진심을 다해, 존경과 감사를 바친다.
시인 주광일, 당신의 생은 이미 시였고, 그 시는 곧 대한민국의 빛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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