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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꾸러미
청수 강문규
몇 날 며칠 닭장 속 달걀
한 꾸러미 모았다.
책보 어깨에 동여매고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 챙겨
졸졸 흐르는 냇물 징검다리 건넜다.
깨어질까 신작로 길
돌부리 비켜 가며
교문에 들어섰다.
교실에 도착해
담임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 은혜에
드릴 수 있는
소박하고 순수한
엄마의 마음이
달걀 한 꾸러미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는 인사
엄마께 전하라신다.
하굣길 행길 가 코스모스 꽃은
산들바람에 넘실넘실 춤춘다.
내 마음도 꽃이 되고 나비가 되었다.
징검다리 건너
언덕배기 넘으니
돌담장 초가집이 보인다.
벌써
땅거미 내려앉고
항아리 굴뚝 연기
모락모락 피어난다.
엄마는 아궁이에
부지깽이 장작불 지펴
저녁 밥상
준비하시나 보다.
빨리 허기진 배 채우러
엄마에게 달려가자.
필통도 배고픈지 연필 소리 요란하게 들린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강문규 시인의 시 '달걀 한 꾸러미'는 유년기의 기억을 중심에 두고, 한 가족의 삶과 정서를 진솔하게 풀어낸 서정시이다. 시인은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를 선생님께 드리는 장면을 통해 물질보다 마음이 중심이 되는 인간관계를 묘사하며,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과 미의식을 보여준다.
먼저 시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이다. 시인은 “한 꾸러미 모았다”는 표현으로, 단순히 달걀을 모았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정성과 기다림, 그리고 사랑을 함께 보여준다. 농촌의 삶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가족은 아이의 교육과 사람됨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선물할 마음을 마련한다.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는 시장에서 산 것도, 값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 정성만큼은 누구의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한 마음이다. 이것은 바로 시인의 삶의 가치 철학, 즉 ‘작지만 진심을 다하는 삶’의 구현이다.
시인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삶을 그린다. 냇물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이나,
“하굣길 행길가 코스모스 꽃은 / 산들바람에 넘실넘실 춤춘다”는 표현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함께 나누는 대상임을 드러낸다. 아이의 마음이 꽃이 되고 나비가 되는 순간, 시인은 독자에게도 정서적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이처럼 자연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비추는 구조는 시인이 가진 미의식, 즉 ‘자연과 감정의 조화로운 일치’를 보여준다.
또한, ‘돌담장 초가집’, ‘항아리 굴뚝 연기’, ‘부지깽이 장작불’ 같은 이미지들은 과거에 대한 애틋함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공간을 환기시킨다. 이 시적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뿌리, 곧 공동체적 사랑과 정서의 근원이 된다. 필통도 배고픈 듯 연필 소리가 요란하다는 구절은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며,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시인의 독창적인 시선이 엿보인다.
이 시는 한 조각의 회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들—성실, 정성, 감사, 사랑—을 환기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잊히기 쉬운 ‘마음의 부요함’을 되살린다. 현대 사회의 급박한 속도와 소비 중심의 삶 속에서, 이 시는 느리지만 충만했던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한다.
결국 '달걀 한 꾸러미'는 단순한 회상이 아닌, 시인이 살아온 삶의 철학과 시적 태도를 응축한 결정체다. 진정성과 따뜻함을 바탕으로,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보편적 감동을 끌어올리는 이 시는, 독자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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