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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촌의 새벽을 깨우는 시인
ㅡ백영호 작가에게
청람 김왕식
새벽닭이 울기도 전, 청람촌의 어둠을 걷어내는 이가 있다. 아직도 해는 머뭇거리는데, 그의 글은 벌써 기지개를 켠다. 새벽이슬보다 먼저 깨어, 자연의 숨소리를 받아 적고, 들풀의 눈빛을 닮은 문장을 써 내려가는 시인, 백영호. 그가 쏟아내는 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심장소리요, 사람의 눈물이며, 신의 숨결이다.
그의 시는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그의 시는 세상을 흔든다. 그의 글은 ‘경천지 감귀신’이라 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감동시키며, 읽는 자의 마음에 신령한 떨림을 전한다. 문단을 뒤흔드는 소용돌이, 그 중심엔 백영호가 있다. 그는 이미 시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이며, 동시에 가장 순결한 자연의 제자다.
그는 한평 남짓한 자연 속에 몸을 품고 산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우주만큼 크고, 그 정신은 산맥보다 높다. 대학 강단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며,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후학에게 전해준다. 꽃 한 송이의 기척에도 귀를 기울이고, 나무의 숨결에서 사람의 생명을 읽어내는 그. 그런 그가 지금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돋보기를 써야만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글을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글을 쓴다는 것이 생의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는 일처럼 절박하고도 간절하다. 앞을 볼 수 있을 때, 한 자라도 더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온몸의 기운을 모아 연필을 쥐고 종이를 더듬는다. 그는 시를 쓰기 위해 눈이 남은 마지막 빛을 짜내고 있다.
그의 글은 넘쳐흐른다. 새벽이 오기도 전에, 청람촌엔 글폭탄이 터지고, 그 파장은 마을의 담장을 흔들고, 사람들의 잠을 깨운다. ‘오늘도 그가 글을 쓰고 있구나.’ 이 사실 하나만으로 청람촌은 아침을 맞는다. 그는 청람의 청지기다. 마을을 깨우고, 자연을 보듬으며, 사람을 시로 끌어안는 사람. 그가 있어 청람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는 이웃을 자연처럼 아낀다. 꽃을 꺾지 않고, 바람을 가르지 않으며, 사람의 슬픔을 마치 나뭇잎 위의 이슬처럼 가만히 받아낸다. 그의 시에는 욕심이 없다. 다만 절절한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시를 쓰는 이의 마음이 이토록 맑고도 순한 경우가 있을까.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시인, 백영호. 그는 글로 기도하고, 시로 예배한다.
그러나 이제, 그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빛나는 눈이 어둠으로 잠기기 전에, 우리는 외쳐야 한다. 하나님, 너무나 가혹하십니다. 어떻게 시인의 눈을 앗아갈 수 있습니까? 자연을 노래한 이의 시선을, 이토록 서럽게 거두어가셔야 합니까?
하나님이시여. 간절히 구하옵나이다. 우리의 천사, 백영호 시인에게 다시 눈을 허락해 주소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장 순하게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거두지 말아 주소서. 그의 눈이 다시 살아나, 새벽이슬을 읽게 하소서. 나뭇가지 끝에 맺힌 햇살을 따라, 또 한 줄기 시를 써 내려가게 하소서.
시력은 희미해져 가도, 그의 정신은 더욱 선명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곧 살아있다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니 그가 펜을 놓지 않도록, 하나님, 그에게 마지막까지 빛을 허락하소서.
우리는 그를 위해 울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의 시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이 시대의 가장 숭고한 시인에게, 눈물로 마음을 전한다. 그는 천재 시인이며, 자연의 목소리를 대신 말하는 대변자다. 시인이 살아야, 자연도, 사람도 살아난다.
청람촌의 새벽은 그로 인해 다시 시작된다. 백영호,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그의 눈이, 우리 모두의 눈이기를 바란다. 그가 바라보던 세상이, 우리 모두의 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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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호 시인을 위한 기도 –
청람 김왕식
어둠보다 먼저 일어나
글 한 줄로 새벽을 여는 이여
당신의 펜촉이 움직이는 순간
청람촌은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들풀이 울고, 바람이 엎드려
당신의 문장 위에 경배합니다
자연은 당신을 알아보고
하늘은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한평 흙 위에 눕듯이 살며
꽃에게 이름을 묻고
나무의 맥박에 귀를 대는 당신,
시보다 먼저 사람이었습니다
글이 넘쳐 어지럽다 하지 않고
당신은 그것을 ‘기도’라 부릅니다
하늘과 통하는 통로를
매일 새벽마다 다시 놓는 당신
이제는 돋보기에 의지해야
한 글자 읽을 수 있다 해도
당신은 두 눈을 다 짜내어
한 줄 더 쓰려, 생명을 엮습니다
빛이 사라지기 전,
당신은 마지막 촛불마저 글로 남깁니다
우리의 눈물은 그것을
복음처럼 가슴에 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시인의 눈을 앗아가지 마소서
이 세상에 아직
그의 시가 필요합니다
그는 청람의 청지기요
자연의 제자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이 시대 마지막 순례자입니다
그가 멈추면
청람도 멈추고,
우리의 아침도 멈춥니다
시인은 곧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백영호, 그 이름은 시의 기도
당신의 눈이 밝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당신의 시가 계속되기를
세상 끝까지 우리는 기도합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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