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 '수필부문' 수상 등단, '평론부문' 수상 등단, '시부문' 수상 등단, 한국문학신문 공모 평론부문 대상 수상

스승과달삼7

헌책방 4화.■ 헌 책방헌 책방은 시간이 머무는 곳이다. 새 책의 반짝임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누군가의 손때와 밑줄, 책갈피가 남아 있다. 정리된 지식보다는 어지러운 기억이, 깔끔한 글귀보다는 눌린 감정이 더 깊이 스며든다. 이곳에선 책이 말을 건다. 오래 기다렸다고, 지금 읽어달라고. 헌 책방은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을 다시 꺼내어준다.□달삼은 좁은 골목 끝, 조용히 열린 책방 문을 밀었다. 종이 냄새와 함께 묵은 시간들이 얼굴을 스쳤다.서가마다 가지런하진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묵언을 지켜온 책들이 있었다.“스승님, 새 책방은 반짝이는데, 여긴 묘하게 눅진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가라앉아요.”스승은 문득 손에 들린 책 한 권을 가볍게 쓸며 .. 2025. 4. 14.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 스승의 가르침, 삶의 길이 되다 어느 고즈넉한 봄날,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꽃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 달삼은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내음과 새들의 노랫소리는 두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깊은 사색 속으로 이끌었다. 이 길 위에서 그들은 단순한 대화를 넘어, 인생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스승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달삼은 조심스레 물으며, 자신의 내면에 품은 수많은 의문들을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듯했다.스승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자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달삼아, 진정으로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란다. 욕망에 끌.. 2025. 4. 13.
햇살을 닮은 사람, 엘리너 ■           햇살을 닮은 사람, 엘리너달삼은 그날따라 마음이 무거웠다. 평소처럼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속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괜찮은 척하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더 큰 소리로 웃어야 했다.그럴 때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었다. 산비탈을 따라 난 좁은 길 끝,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있는 기와집. 스승이 머무는 곳이었다.스승은 마당에 떨어진 감 하나를 주워 손바닥 위에 굴리고 있었다. 달삼이 들어서자마자,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오늘은 어떤 생각이 널 이리 이끌었느냐.”달삼은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스승님… 사람들 앞에선 늘 밝은 척하고, 괜찮은 척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스스로도.. 2025. 4. 11.
4.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나무의자 3화 3화.■                    나무의자나무의자는 오래 앉을수록 더 편해진다. 반듯하지만 억세지 않고, 조용하지만 품이 넓다. 나뭇결 속에 스민 온기와 삐걱이는 소리는,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시간의 흔적이다. 비록 낡고 삐걱거리더라도, 누군가가 앉아 주기만 하면 언제나 제 자리를 내주는 존재. 나무의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다림’과 ‘받아냄’을 가르쳐준다.□해 질 무렵, 달삼은 마당 한 켠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등받이, 한 쪽 다리가 살짝 짧아 흔들리는 균형. 오래된 의자였다.“스승님, 이 의자는 삐걱거리긴 해도 이상하게 정이 가요.”스승도 조용히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그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준 의자기 때문이지. 낡았다는 건 쓸모를 다했다는 게 아니라, 많.. 2025. 4. 11.
3.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빈 그릇 2화 2화■               빈 그릇빈 그릇은 비어 있어서 아름답다. 허전함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다는 여백이다. 밥을 담기 전에도, 다 비워낸 후에도 그릇은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 익숙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비울 수 있는 용기’다. 비워야 담을 수 있고, 담았던 것보다 남긴 마음이 더 오래간다. 빈 그릇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준다.□달삼은 설거지를 하다 손에 남은 그릇을 들어 올렸다. 하얗고 얇은 사기그릇.“스승님, 다 비운 그릇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에요. 허전한 듯, 깔끔한 듯, 이상하게 편안해요.”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그건 네 마음이 지금 어딘가 비워진 상태이기 때문이지. 가득 찼을 때보다, 다 비웠을 때가 오히.. 2025. 4. 11.
2.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골목길 1화 1화■ 골목길골목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다. 길과 길 사이, 삶과 삶이 맞닿는 지점이다. 넓은 도로에선 볼 수 없는 낡은 벽돌, 창틀 너머로 흐르던 연기, 고무신 끄는 소리, 골목은 기억이 쉬어가는 곳이다.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 사이, 아직 사라지지 못한 마음 하나가 남아 있다면, 아마 그건 골목 어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달삼은 오래된 골목길 입구에 서 있었다. 벽돌 담벼락에 이끼가 끼고, 전깃줄은 낮게 늘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된장국 끓는 냄새가 났다.“스승님, 이 길은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아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길처럼요.”스승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골목길은 기억의 복도지. 많은 이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2025.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