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미학3 낙화 ㅡ 시인 허태기 ■ 낙화 시인 허태기그리워 꽃잎 하나 띄워 봅니다임 오실까 여기저기 꽃잎 띄웁니다찢어지고 흩어져 뼈만 남을지라도떨어진 꽃잎 딛고 찾아 주시오면설혹 실망하여 발길 돌릴지라도저려 밟힌 아픔만으로도임의 사랑 넘치게 받았으니한 점 원망도 아니하겠습니다.■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ㅡ허태기 시인의 '낙화'는 생의 마무리 혹은 관계의 끝에서조차 ‘사랑’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는 시인의 따뜻한 내면 철학이 깃든 작품이다. 이 시는 꽃잎을 매개로 하여 임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기다림 속의 상처와 고통마저도 기꺼이 품으려는 태도를 통해 삶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내면의 순결한 미학을 드러낸다.‘그리워 꽃잎 하나 띄워 봅니다’는 문장은 무언가를 .. 2025. 4. 23. 고요를 낚는 사람 ■ 고요를 낚는 사람 김왕식 새벽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숨결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낮게.세상의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 시간—누군가는, 낚시 도구를 챙긴다.조심스럽게.마치 마음을 꺼내듯, 주섬주섬.그것은 단지 물고기를 위한 채비가 아니다.어제의 소음을 벗고,오늘의 고요를 맞이하려는 의식이다.그는, 숲 속 저수지로 향한다.나무들은 잠든 듯 고요하고물은 속삭이는 듯 잔잔하다.그 사이를 천천히, 그는 걸어간다.낚싯대를 든 그의 모습은—자연 속에 스며든 한 줄기 호흡 같다.세상과 한 걸음 떨어진 곳.그곳에서 그는 세월을 낚고자 한다.낚싯대는 기다림의 언어이고무딘 바늘은, 삶의 흔적이다.날카로움은 닳아 .. 2025. 4. 12. 4. 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나무의자 3화 3화.■ 나무의자나무의자는 오래 앉을수록 더 편해진다. 반듯하지만 억세지 않고, 조용하지만 품이 넓다. 나뭇결 속에 스민 온기와 삐걱이는 소리는,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 시간의 흔적이다. 비록 낡고 삐걱거리더라도, 누군가가 앉아 주기만 하면 언제나 제 자리를 내주는 존재. 나무의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다림’과 ‘받아냄’을 가르쳐준다.□해 질 무렵, 달삼은 마당 한 켠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등받이, 한 쪽 다리가 살짝 짧아 흔들리는 균형. 오래된 의자였다.“스승님, 이 의자는 삐걱거리긴 해도 이상하게 정이 가요.”스승도 조용히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그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준 의자기 때문이지. 낡았다는 건 쓸모를 다했다는 게 아니라, 많.. 2025. 4.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