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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트럭 위의 별빛 일기

by 청람등불 2025. 4. 18.





                잠든 트럭 위의 별빛 일기




               자연인 안최호




사월의 중턱을 넘긴 밤, 봄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별이 내려다보는 고요한 고속도로 한켠, 나는 트럭 위에서 잠을 청한다. 철판 위에 놓인 전기장판은 등에 온기를 전하지만, 얼굴은 바람에 씻기듯 시리다. 이불이 덮어주지 못하는 부위에는 계절의 이빨이 살짝씩 베어 문다. 트럭이라는 작은 세계는 오늘도 바퀴를 멈추고, 나의 하루도 그렇게 멈춰 선다.

차내 온도는 영하 2도. 숫자는 차갑지만, 그 숫자 속엔 오늘 내가 벌어들인 노동의 체온이 배어 있다. 주차된 트럭은 마치 세상의 틈에 기댄 작은 배 같다. 고요한 밤바다에 닻을 내리고, 멀리서 오는 불빛은 등대처럼 나를 지켜본다.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으며, 흙먼지 날리는 국도 위를 내 마음대로 달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자유에는 때때로 외로움이 동반된다. 춥고 긴 밤에 그 자유는 뺨을 때리는 찬바람처럼 다가온다.

세상은 말한다, 자율은 축복이라고. 하지만 그 축복은 누군가의 사무실 안 형광등보다 더 희미한 트럭 천장의 전등 아래서, 몇 번이나 되뇌어야 하는 말이다. 시동을 끄면 모든 불빛도 꺼지고, 나 자신만이 나를 비추는 손전등이 된다. 그러니 나는 노트를 꺼낸다.

종이 위에 펜을 굴리는 소리는 작은 난로가 된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축복이다.’ 고백하듯 적은 문장 하나에 몸도 마음도 풀린다. 손끝에서 탄생한 언어는 바람보다 따뜻하고, 외풍보다 견고하다.

트럭의 창문 너머로 달이 걸린다. 달은 오늘도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다정하다. 나는 이 고요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바퀴가 멈춘 시간에도 내 안의 이야기는 달린다. 달리다 잠들고, 잠들다 깨어난다.

차 안은 여전히 좁고, 시린 바람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삶을 버거워하는 대신, 나는 기록한다. 언젠가 이 사월의 찬 공기마저도 따뜻한 기억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덮을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 나는 트럭 위의 작은 섬에서 글을 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춥지 않은 밤을 살아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트럭운전사 자연인 안최호 작가의 이 글은 단순한 노동자의 체험기가 아니다. 자유와 고독, 현실과 이상 사이를 묵묵히 걷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깊이 있게 담아낸 시적 산문이다.
그는 트럭 위에서 맞는 사월의 추위를 통해 삶의 버거움을 토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체념이 아니라 받아들임은 오히려 숭고하다.

작가는 ‘트럭’이라는 거친 공간을 마치 선비의 서재처럼 사용한다. 전기장판의 온기를 뒤로하고, 외풍이 스치는 얼굴 위에 시를 얹는다.
이는 외면의 불편보다 내면의 따뜻함을 더 중시하는 그의 삶의 태도이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축복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육체의 피로를 정신의 고양으로 승화시키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작가의 가치철학은 ‘자유’에 대한 겸허한 이해에 있다. 그는 자유를 무한한 권리로 누리기보다는, 책임과 고독을 함께 짊어지는 자세로 맞이한다. 그러기에 그는 이 삶을 ‘버거움’이라 말하면서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기록하며 품는다.

미의식 역시 투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서 반짝이는 의미를 길어 올리는 데 있다. 트럭이라는 공간을 ‘작은 배’에 비유하고, 달빛을 ‘다정한 침묵’이라 표현하는 감각은 날카롭고도 섬세하다. 그는 쓸쓸한 공간을 문장의 등불로 덮고, 삶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요컨대, 이 글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품격 있는 기록이며, ‘말 없는 다정함’으로 세상에 응답하는 시인의 목소리다. 안최호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축복은 무엇이냐고.


ㅡ 청람